웨하스
하성란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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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담배 연기를 내뿜듯 거친 숨을 내쉬었다. 가슴에서부터 시작된 경련이 빠른 속도로 아버지의 몸을 훑어내렸다. 삶은 엄지발가락 끝에서 오래 머물렀다. 풀 이파리에 앉은 나비 같았다. 그래서 여자는 사람의 육신을 움직이는 혼이라는 것이 한 마리 나비처럼 아주 가볍고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후 엄지발가락의 경련도 잠잠해졌다.

p.130  -[낮과 낮]

 

아버지는 무영이든 아니든 상관없는 듯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오점없이 홀가분하게 가고 싶었다. 죽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고 싶었다. 나는 무영의 뺨에 난 흉터를 올려다보았다. 대체 저 사내는 누구일까. 내가 알고 있는 무영은 눈이 나빴다. 눈이 나빠 커다란 국화 송이를 찐빵으로 알고 달려들었다고 했다. 무영의 그 말 때문에 난 늘 커다란 국화 송이를 볼 때마다 김 오르는 찐빵이 떠올랐던 것이다.

p.198  -[임종]

 

 

남자는 며칠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그 문장에 이르렀다. 연의 지적대로였다. '두 자식을 앞세우고 뒤따라가는 산책길에서 자꾸만 현기증이 인다. 햇빛마저 서글프다.' 전혀 다른 그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장성한 아들과 딸의 보폭은 크다. 시인은 일부러 걸음을 늦추고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걷는다. 눈부신 햇살이 아이들의 어깨에 걸려 있다. 왜 그런 오독을 하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무심결이었을 것이다.

pp.222~223  -[무심결]

 

 

하성란, <웨하스> 中

 

 

+) 나는 아직도 하성란의 <곰팡이꽃>에 대한 충격을 잊지 못한다. 이 작가에게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끈질긴 힘이 있고, 글을 차분하게 풀어내는 끈질긴 능력이 있다. 그 마이크로적인 묘사와 치밀하고도 섬세한 감각이 좋아서 무작정 하성란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꽤 오랜만에 동경하는 소설가 하성란의 소설집을 읽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무심결]이었는데 읽으면서 정말 하하하, 웃어버린 작품이다. "두 자식을 앞세우고 뒤따라간다"라는 문장은 분명 충분히 오역할 수 있는 문장이다. 이 글에서는 자식을 앞세워 걸었던 시인을, 자식을 먼저 보낸(죽음) 시인으로 오해한 서술자를 발견할 수 있다. 그건 정말 '무심결'이었을텐데,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그런 실수를 잘 잡아내어 꼼꼼하게 풀어쓴 능력은 단연 최고이다.

 

여전히 치밀한 묘사를 하고 있으나 다만 서술성이 좀 강해진 기분이 든다. 그래서일까. 하성란의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었다. 흥미로운 작품을 좀 더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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