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랜덤 시선 28
문성해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억새'

 

새가 되지 못해 억울하였나

한나절 내내 긴 장호 신고 뻘에 들어가 있는 사내가

희끗한 턱수염을 날리고 있다

거웃이 시커멓게 자랄 때부터 대처로 나가 장돌뱅이로 살고 싶은 사내를

처음엔 죽은 노모가 붙잡더니

해질녘이면 뒷산에서 소쩍새 울음소리로 선산이 붙잡고

이제는 다 늙은 육신이 뻘이 되어 발목을 붙잡는다

아무도 사내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어도

평생 자신에게만 관심을 둔 사내

굽은 허리조차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안으로 둥글게 말려 있다

대처로 나간 사람들이 하나 둘 섬으로 돌아올 때마다

다시 싱싱한 허벅지로 이 뻘을 빠져나가는 사내

오직 생각만으로 귀밑머리가 성글어진 사내

사내의 대처는 허연 머리칼이 흩날리는 창공에 있다

 

 

문성해,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中

 

 

+) 문성해의 이번 시집에는 수많은 꽃들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부용화나 능소화나 목백일홍 같은 것들은 / 속내 같은 거 우회로 같은 거 은유 같은 거 빌리지 않고 / 정면으로 핀다"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 "그래 나 미쳤다고 솔직하게 핀다"는 특성 말이다. ([여름 꽃들]) 식물들의 속성을 포착하여 놓치지 않고 인간의 삶과 연결짓고 있다. 심지어 연못물 위로 비치는 두개골이 못물 위에 사라진 연 잎사귀를 대신할 정도로([연 잎사귀가 못물 위에서 스러져갈 때]) 인간과 자연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다.

 

"한 잎의 배춧잎을 보니 / 체념한 사람네 일이 다 우스워"진다. 이는 화자가 사람이 살아가는 生을 자연의 일생 혹은 자연만의 개성적인 특성에 빗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쑤욱쑤욱 연꽃송이들로 피워올린 배추밭 / 사는 일이 이리 다 명징해지는 한나절이다" 이처럼 화자의 목소리는 비교적 직설적이다. ([가을 배추밭에서]) "사람의 말도 / 꽃의 말도 필요 없는 그 지경에 /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 그 곁에 언제나 시인이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시인의 구사하는 생각의 고리가 좀 단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은유나 직유 같은 비유에 의존하여 자연과 인간의 연결점을 찾고 있는 것은 기존의 여느 시집에도 존재한 것이다. 좀 더 새롭고 참신한 것을 기대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신선하게 펼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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