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p.25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것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p.40
그는 검사가 되지 못했다. 엄마는 그에게 니가 하고 싶어 하는 것, 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것이 엄마의 꿈이기도 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청년시절에 꾼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의 엄마의 꿈을 좌절시킨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엄마는 일평생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한게 엄마 자신이라고 여기며 살았다는 것을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미안한 사람은 저에요, 나는 약속을 못지켰으니까.
p.137
너는 깨달았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습관적으로 엄마를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엄마를 생각하면 무엇인가 조금 바로잡히고 내부로부터 뭔가 다시 힘이 솟구쳐올라오는 것 같았으니까. 너의 습관은 엄마를 잃어버린 뒤에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p.280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 "우리 엄마가 저 책을 읽으면서 막 우시는 거에요. 난 처음 좀 읽다가 지루해서 관뒀어요." 아이의 말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곳에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있었다. 나는 그 책을 빌려 단숨에 읽었다. 혹시 나도 눈물이 나지 않을까 가슴 저릿저릿한 기대를 하고서.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엄마와 자식 사이의 관게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자식을 낳은 여자들이 읽으면 충분히 뼛속 깊이 와 닿을 이야기이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겁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 시대의 모든 어머니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좀 신기했던 것은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오래 전 그녀가 추구했던 문체에서 많이 벗어났구나 하는 점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읽기 쉽지 않다는 생각에 망설였는데, 이번 책은 그런 초기의 문체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그녀도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연륜이 묻어나는 글을 읽으면서 마음 한켠이 넉넉해졌다. 어머니에 대한 많은 단상이 떠올랐지만 무엇보다 나의 꿈이 당신의 꿈이었을꺼라는 구절에서 울컥 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좀 더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다.
가족애와 인간애를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형제들의 시선으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며 어머니와 아버지도 각각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솔직하고 안타까운 점이 많은 가족애를 살린 훌륭한 필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