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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독서로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를 두려움 없이 똑바로 바라보게 할 수는 있다. 같은 생각을 품은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남에게 이해받는다는 것의 기쁨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낀 순간 소년이 자신도 모르게 사육하던 괴물은 자취를 감추었다.
p.16 -[위험한 독서]
한번 지나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처음'이라 이름붙이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 따라서 모든 처음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마지막'이다.
p.19 -[위험한 독서]
현명한 독자가 되고 싶다면 독서를 통해 교훈 따위를 찾아낼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라. 독자로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계몽이 아니라 공감이니.
p.21 -[위험한 독서]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가 시작인께. 진짜배기 승부는 그때부터지. 그전까지 암만 삽질을 혔어도 정신 바짝 챙겨 죽기를 각오하고 뎀비믄 거시기할 수 있지만 한순간 삐끗하믄 말짱 물거품이 돼버린단 말이여. 인생도 매한가지랑께. 매순간 지금이 9회말 투아웃이다 생각하고 에미 젖 물던 힘까지 쥐어짜낼 각오로 거시기혀야 쓴다.
p.107 -[게임의 규칙]
김경욱 소설집, <위험한 독서> 中
+) 김경욱의 다른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는 것도 같은데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위험한 독서]를 읽는 내내 탄식을 뱉었다. 와, 굉장한걸?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본 작가이다. 이 사람의 소설은 반반의 느낌이다. 처음의 반은 작가의 생각이 너무 강해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받기에 진땀을 빼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의 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상상력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서사기법은 추리물을 닮아 제법 흥미롭다는 점이다.
그가 쓴 다른 책을(기억 속의 작품도 뚜렷하지 않듯이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읽고 싶어졌다. 적어도 그의 작품은 식상한 이야기꺼리가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아,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든다. 또한 그것이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위치에 존재하는 소재들이 아니라 현실의 일부이거나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소재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일상의 용어를 활용하여 1인칭의 시점을 꾸준히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독자의 입장에서 좀 더 진실되게 다가설 수 있었다.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위치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이 소설집을 다 읽고 작가의 삶에 대해 상상해 본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