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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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도 밥과 같아서 오래가면 쉬게 마련이라 자꾸 폐를 끼치면 나중에 정말 도움이 긴요할 때는 냉정하게 돌아선다고 아버지는 말했고 할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p.74

 

 아무런 악한 짓도 저지르지 않앗는데 신은 왜 저에게만 고통을 주는 거에요? 믿고 의지한다고 뭐가 달라지죠?

 신은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시는 게 그 본성이다. 색도 모양도 웃음도 눈물도 잠도 망각도 시작도 끝도 없지만 어느 곳에나 있다. 불행과 고통은 모두 우리가 이미 저지른 것들이 나타나는 거야. 우리에게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우여곡절이 나타나는 거야. 그러니 이겨내야 하고 마땅히 생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그게 신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거란다. 어서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려야지!

 

아내와 딸들이 총살당하고 잠무카슈미르를 떠나면서 나는 너와 똑같이 신을 원망했다. 어째서 이렇게 선량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느냐고. 그런데 육신을 가진 자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지상에서 이미 지옥을 겪는 거란다. 미움은 바로 자기가 지은 지옥이다. 신은 우리가 스스로 풀려나서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오기를 잠자코 기다리나.

p.263

 

 

황석영, <바리데기> 中

 

 

+) 황석영의 소설을 읽을 때면 참 묘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연륜에서 오는 소질인지, 천부적인 재질인지, 아니면 죽어라 노력한 것에서 나오는 개성인지 모르겠으나 분명히 이 작가는 묘사를 깔끔하게 해낸다. <바리데기> 또한 바리라는 아이의 생(生)을 통해 우리 나라에 시작된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넘어, 타국에서 겪는 민족과 빈부의 격차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무속인의 핏줄을 타고난 '바리'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그녀의 성장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뤄지고 있는 것들은 한 개인을 넘어서 민족과 세계화까지 나아간다. 그 사이사이 여자로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차별에 맞서 소소하게 대응하는 바리의 모습도 보게 된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전개되는 장면마다 머릿속 화면에 떠오른다. 굴곡진 여인의 삶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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