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젊은 놈이 평론가 같은 거 되어서 뭐해? 저기 객석에 앉아서 남이 하는 일에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건 노인네들이나 하는 짓이야. 젊은 사람은 무대에 올라가야지! 못해도 상관없어, 서툴러도 상관없다고. 내 머리와 내 몸을 움직여서 열심히 뭔가를 연기하지 않으면 안돼!"
"젊다는 건 특권이야. 자네들은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다는 특권을 가졌어. 근데 평론가라는 건 본인의 실패를 안 하는 일이잖아? 그러니 안 된다는 게야."
p.137
"그렇겠지. 거울에 빠져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눈에 안들어와. 주위의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지. 자의식이란 바로 그런 거야."
"하지만 뭔가 창조해내는 쪽에 선 사람이 자기 자신에 빠져 있어서는 곤란하지. 요즘 자네가 바로 그래. 카피 라이팅이라는 업무를 빙자해서 세상을 향해 한 말씀 해주시려고 한다든가 내 눈에는 이게 옳으니까 너희는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식의 공명심이 뻔히 다 보여. 자네가 장래 뭐가 되고 싶은지, 나는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현재의 다무라 군은 카피라이터야. 뒤에 숨어 있어야 할 카피라이터라고."
p.249
우쭐하지 마라,
p.251
오쿠다 히데오, <스무 살, 도쿄> 中
+) 역자 후기의 말에 따르면 오쿠다 히데오는 '자신의 주장이나 사상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살가다운 문장법과 미려한 비유조차 "뭔가 같잖은 짓인 것 같아" 최대한 생략해버리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만큼 '당연히 다른 어떤 작가보다 가볍고 쉽게 읽히지만 이 작가가 뒤에 꼭꼭 감춰둔 것, 그가 소설을 쓰기 전까지 품었던 생각의 바탕은 가벼운 웃음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다.'는 것이다.
난 역자의 후기에 적극 공감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서는 작가의 목소리가 철저하게 숨겨져 있다. 그는 인물과 상황 설정만으로 우리가 많은 것을 깨닫도록 유도하고 있는 작가다. 구구절절히 자신의 생각을 읊기보다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독자가 따라오도록 글을 써내려간다.
그의 소설은 꽤 유쾌하고 상쾌한 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벼운 내용만을 다룬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든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스무 살 어린 나이에 대학을 관둔다거나 하는 사건들이 제시된다. 그것은 결코 가볍게 웃어넘길 소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잠깐 그러나 깊이 응시하는 것으로 작품에서 마무리한다. 전체적으로 그러한 소재들을 받아들이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셈이다.
나는 오쿠다 히데오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건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면서 진지함을 잃지 않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스무 살에서 서른 살이 되기까지의 한 청년의 고민과 방황이 묘사된다. 작가는 인생의 청춘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시대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무겁게 한없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얕은 듯 깊은 작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나는 그런 그의 작법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