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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공지영 지음 / 창비 / 1999년 7월
평점 :
산다는 것은 결코 자동사가 아니란다. 그것은 엄정한 타동사지. 삶과 사랑과 네가 꿈꾸던 변혁....... 그것들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고 때로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단다. 하지만 그것들은 자기를 부서뜨리는 아픔과 이런 예측 못한 미끄러짐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들은 각자의 과녁에 닿기까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폭풍이 잠드는 시간, 아픔이 잦아드는 시간, 상처가 아물어가는 그런 시간...... 제발이지 성급하지 말아라.
- [길] p.144
모든 존재는 저마다 슬픈 거야. 그 부피만큼의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 비로소 이 세상을 다시 보는 거라구. 너만 슬픈 게 아니라...... 아무도 상대방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그것을 닦아내줄 수는 있어. 우리 생에서 필요한 것은 다만 그 눈물을 서로 닦아줄 사람일 뿐이니까.
-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p.159
가끔 말은, 말 자체의 덫에 걸린다. 대개는 개념어보다 감정어가, 명사보다는 형용사가 그렇다. 형용사나 감정어에는 각기 다른 개인의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이런저런 기억에 의해 대개는 왜곡되고 과장된다. 서로 미묘하게 차이나는 나름의 내용을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 [조용한 나날] p.190
삶이란, 젊은 내가 함부로 생각했듯이 변증법적으로만 전개되는 것은 아니며, 그러니까 삶은 뭐랄까 불가해한 것이니까. 작은 상처와 사소한 마음먹음 하나가 생을 뒤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으니까.
-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 p.255
공지영 소설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中
+) 공지영의 산문을 읽으면 그녀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사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경험에 근거한 것이겠으나, 비교적 그녀는 삶의 낱낱들을 거리를 두고 지켜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 거리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상처와 상처를 극복 혹은 외면하게 된 시간 사이에서 솟아나온 것일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겪은 듯한 이야기를 남의 목소리로 흉내내듯이 읊조리는 어법이 부러웠다. 그것이 작가 본인의 경험이 아닐지라도 감정적 흔들림없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서술자의 태도가 무척 독하다고 생각됐다.
그런데 그녀의 소설에 이렇게 대화체가 없었을까. 그러고보니 이 책에는 직접적인 대화는 가능한한 절제하고 간접적인 대화로 대부분의 소설을 전개했다. 따옴표가 드러나는 직접적인 대화와는 달리 간접적인 대화법은 독자로 하여금 참을성있게 대화의 대상들을 찾아가며 읽도록 요구한다. 몇몇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 관계에 따른 아픔과 그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극복하는 혹은 피하는 방법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상처들에 대한 고민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에서 올 수 있는 것이며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최소한의 상처를 남기기 위한 방어적인 전략이다. 그것은 방어하는 만큼의 공격성은 갖고 있지 않다. 서술자는 그저 자신과 자신의 생을 보호하는 것에 목적을 둘 뿐이다. 공지영의 소설에는 지독한 고독과 인간애, 사랑과 이별에 대한 작가의 단상이 잘 드러난다. 중간중간 인물의 목소리를 빌어 드러나는 작가의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걷던 길에서 잠시 멈춰서게 만든다. 공감의 끄덕임이 필요한 시간이다.
물론 작가의 주관이 서술상의 묘사 보다 직접적인 설명에 치중된 부분도 없지 않으나, 나는 아직까지 이런 소설이 좋다. 1999년과 2009년, 이 책이 만들어진지 꼬박 10년이 지났다. 지금 작가가 소설집을 낸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무엇보다 그녀가 다루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일지 가장 궁금하다. 생과 사람에 대한 고민을 어떤 소재에서 시작할지 기대되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