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의 나비 - 우리가 꼭 읽어야 할 박완서의 문학상 수상작
박완서 지음 / 푸르메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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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형한 눈, 한 번도 의식화되지 않은 눈, 앞으로 의식화 될 가망이 전혀 없는 채송화시만 한 눈이 느닷없이 나의 어떤 지난날부터 지금까지를 한꺼번에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에 나는 전율한다. 그 채송화씨만 한 눈이 샅샅이 조명한 나의 생애는 거러지보다 남루하고 나의 손은 피 묻어 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

 

권위란 상대방으로 하여금 하고 싶은 말을 참게 하는 어떤 힘이 아닐까?

 

-[엄마의 말뚝 2]

 

차도로 나왔으나 좌회전을 하지 못해 돌아가야 할 도시를 뒤로 하고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어딘가에 유턴 지점이 있겠지. 유턴 지점을 열심히 찾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믿으며 상쾌한 속도를 냈다.

-[꿈꾸는 인큐베이터]

 

암만 해도 저건 현실이 아니야. 환상을 보고 있는 거야. 영주는 그래서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녀가 딛고 서 있는 것은 현실이었으니까. 현실과 환상 사이에는 아무리 지척이라도 아무리 서로 투명해도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별개의 세계니까.

-[환각의 나비]

 

 

박완서 문학상 수상 작품집, <환각의 나비>

 

 

+) 박완서의 작품은 여성의 깊은 곳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게 바로 장점이자 단점인데 작품의 색깔이 비슷하다는 역설적인 공통점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여성의 생애를 깊이있게 다루는 작가도 드물다. 그래서 박완서의 작품을 읽으면서는 늘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이번 수상작품집에 실린 제 7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작인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이란 작품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기존의 그녀가 다루는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꽤 정밀하게 쓰여진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제 막 등단한 젊은 작가의 작품이랄까. 소파 수술을 주로 하는 산부인과 여의사의 고통과 기억에 대한 글인데, 그 소설에 상징적인 장치를 믿음직하게 실었다.

 

박완서라는 작가는 사실 작품보다 이름이 더 기억되는 사람이다. 그것은 다작의 작가이기도 해서 그렇겠지만, 비슷한 작품 색깔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녀에게 새로운 작품을 요구하기보다 그녀의 작품에 구별의 선을 그어보면 어떨까.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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