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난 불행해'라는 생각이 '지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익한 활동'이라는 생각으로 확장되기란 어찌나 쉬운지.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라는 경박한 불평이 '사랑은 환상'이라는 우아한 경구로 승화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흥미로운 점은 존재와 사랑이 무익하냐 아니냐가 아니라(일개 인간이 그런 걸 어떻게 알겠는가?), 어떻게 본래의 촉매제는 사라지고 아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좌우명만 남느냐 하는 것이다.
p.49
"어째서?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랑 사귀는 게 훨씬 흥미진진한걸."
"그래? 왜?"
"글쎄, 그들이 섹시하고 멋진 데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니까. 아무튼 사랑한다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상관이야?"
p.96
하지만 사랑에서는 권력이 훨씬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정의에 의존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p.175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게 많은 사람에게 힘 들이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
p.177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中
+)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은 쉬운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스토리 자체는 꽤 단순하다. <우리는 사랑일까>는 런던에 사는 광고 회사 직원 앨리스가 파티에서 만난 남자 에릭과 엮어가는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이다. 청춘남녀의 만남에 대해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을 번갈아 가며 서술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말랑말랑한 러브스토리에 플라톤, 탈레스, 헤겔 등 철학가들의 사상과 오스카 와일드, D.H. 로렌스 등 문학가들의 정의, 그리고 앤디 워홀의 예술적 의미가 절묘하게 녹아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과감하게 철학가와 문학가들의 이야기를 끌어들였다는 점이 신선했으나 이해하려면 천천히 곱씹어 읽을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간혹 소름끼치도록 정확하게 짚어주는 것, 그런 작가의 손길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했을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심리학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러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깨달으려고 읽을 필요는 없다. 그저 그런 생각도 있구나, 새로운 것들을 접해 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래야 부담없이 독서를 할 수 있다. 그의 말이 진리는 아니지 않겠는가. 다만 남녀 사이의 관계를 가볍지 않게, 진지한 심리학적 자세로 나누는 작가의 태도에 찬사를 보낸다. 흥미로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