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공상이니까요. 어쨌든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종종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의 삶에는 나를 여러 개로 나누는 어린시절의 놀이가 언제까지나 계속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고독의 발견]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인간의 자기애는 아무리 열악한 것이라 해도 주어진 조건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 있으며 그 삶을 합리화하게 마련이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우리는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저 받아들여야만 한다. 거기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올바른 길이란 건 없어. 인간은 그저 찾아다녀야 할 뿐이야.
-[지도 중독]
 
세상 사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어쩌면 틀을 갖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일종의 삶의 매뉴얼 말이다. 아무리 복잡한 일도 틀에 집어 넣으면 단순해져버린다. 시간도 마찬가지여서 날짜와 빈칸만으로 이루어진 채 플래너수업을 펼쳤을 때는 내 앞의 많은 미지의 시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몇 개의 스케줄을 적어넣으면 그것은 조각조각 나뉘고 그 다음부터는 익히 아는 일상의 시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경륜이라고 좋게 보든 보수화되었다고 비난하든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세상일이 놀랍지 않게 생각되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무기력해진다는 사실이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은희경,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中
 
 
+) 무게감이라고 해야 할까, 색깔이라고 해야 할까. 꽤 오랜만의 은희경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래서일까. 뭔가 내가 은희경이라는 이름 석자에서 느끼는 것과 사뭇 다른 이것은 무엇일까. 무게감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지, 색깔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내가 너무 오랜만이라 그녀에 대한 느낌을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톤을 유지하고 있다. 한 가지 색을 띄고 있다. 인물들이 겪고 있는 혼란은 그것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것으로 각자 스스로에게는 위악스럽다.
 
작가가 소설들을 통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애착은 사실 부족함에서 오는 것이다. 결핍에 근원을 두고 있는 인간의 외로운 견딤이 삶이 아닐까. 은희경은 성실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은희경의 소설 몇 편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내가 다른 누구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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