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리본의 시절
권여선 지음 / 창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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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증오를 불태워보기로 했다. 아둥바둥 발버둥쳐봐야 어차피 늦었다. 그녀는 또 한번 제대로 버려졌고 그리하여 목든 것은 제자리를 찾았다. 황금이 녹아 끓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 내부를 불지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지옥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그지없이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가을이 오면]
 
이 모든 불건전한 조건 탓인지 서른이라는 나이에 관한 내 사고는 별 진전 없이 같은 자리만 맴돌았다. 모든 자연수가 그렇듯, 내가 겪어온 모든 나이들, 그리고 내가 겪어갈 모든 나이들이 각각의 고유성을 갖고 있었다. 삼십대의 첫번째 나이가 십대의 여덟번째 나이나 오십대의 세번째 나이보다 더 의미심장할 까닭이 없었다. 서른이 특별한 것은 모든 숫자가 특별하다는 바로 그 평범한 진리에서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녀들을 만난 내 서른 즈음은 지금에 와서도 특별했다고밖에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
[분홍 리본의 시절]
 
"밑줄을 어디에다 쳤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떻게 쳤느냐가 중요하지! 너는 예전에 이 문장을 읽고 네 멋대로 오해를 하고 갑자기 밑줄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지. 그런 건 의미가 없어. 아주 작은 의미는 있겠지만 별로 대단하게 큰 의미는 없단 말이야. 중요한 건 네가 오래전부터 이런 식으로 밑줄을 치면서 살아왔다는 사실이야."
[약콩이 끓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휴가는 더 긴 지속을 위한 잠깐의 휴지로서 차와 해변과 휴양림이 있는, 최소한 만화나 추리소설 베스트 목록과 조식을 제공하는 시내 호텔 리스트가 있는 삶의 쉼표 같은 것이다. 그에 비해 내 휴가는 마침표 뒤에 오는 말없음표처럼 대책 없는 것이다. 휴가를 위해 사직을 불사하는 것은 제 뿔의 세기를 알아보고자 거대한 나무둥치에 뿔을 박고 고사하는 코뿔소처럼 어리석은 욕망이지만 어리석은지 아닌지는 당사자인 코뿔소에게는 절대적인 생존 능력의 측정인 것이다. 자신이 어떤 모욕을 도저히 참고 견딜 수 없는지 생사를 걸고 증명한다는 점에서 결투 또한 그렇다. 고작 사년의 경력과 팔년의 우정을 걸었을 뿐이지만 나는 내 휴가가 여행보다는 실종 같은 것이기를 바란다.
[반죽의 형상]
 
권여선, <분홍 리본의 시절> 中
 
 
+) 권여선의 소설은 오감이 잘 버무려진, 그중에서도 특히 미각을 재치있게 활용한 문구들로 만들어졌다. 작가의 근본적이고 자극적인 외침들은 펜 끝에서 미감으로 되살아난다. 어찌보면 음식이라는 소재나 '혀'와 '맛'을 끌어들여 소설을 전개시키는 것은 그녀만의 작법일지 모르나, 그것이 작가의 소설에서 특징적으로 보인다면 권여선의 개성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음식이 늘 중요한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나, 소설의 전개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 그녀, 남자, 나 등 소설에는 익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설명하는 것은 직업이나 성별 혹은 아니가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정도이다. 이렇게 불친절한 인물 소개는 소설을 읽는 내내 인물들의 특징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숨가뿐 추격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소설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왜 나는 이 작가의 단편들의 마무리가 아쉬울까. 자꾸 아쉬움이 남는 것은 눈에 띄는 메세지가 없다고 판단되서일까. 간혹 소설마다 보이는 욕망에 들끓는 인물들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잘 쓴 문장들이 잘 나열되어 있으나, 문제는 연결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어떻게 더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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