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역사를 구상하는 사고의 틀은 일본의 근대 국가 형성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거기서 산출된 이야기는 국민(민족) 의식의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의 의식까지도 강하게 구속하고 있다. p.32 이렇게 해서 근대의 국민을 독자로 가진 비문은 이윽고 한국인 독자도 획득함으로써 근대 한국의 텍스트로서, 고구려 텍스트로서의 비문에는 없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였다. 비문은 바로 근대의 표상과 함께 소생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1970년대 이후의 비문을 둘러싼 논쟁은 비문의 표상을 둘러싼 논쟁이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근대 텍스트로서의 비문의 표상은 국민이라는 '상상의 공동체'에 알맞은 이야기의 역할을 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근대 텍스트로서의 비문은 동아시아에서 국민 형성을 위한 담론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 것이다. pp.77~78 좋든 나쁘든 우리는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일국사의 틀 속에서, 더구나 근대의 컨텍스트에 끌어당겨서 지난 100년 동안 역사를 구상해 왔다. 그때문에 '사실'(史實)이라고 하는 것도 일국사라는 패러다임의 이론 부하성과 근대의 편향을 띠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일국사를 넘어서는 광역권에서 새로운 역사의 패러다임을 추구하려 한다면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이전의 역사적 '사실'(事實)이 재구축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근대의 컨텍스트에 끌어당겨진 고대를 근대의 컨텍스트에서 다시 읽는 작업도 조속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p.79 이성시, 『만들어진 고대』 中 +) 근대의 컨텍스트에 끌어당겨진 고대가 근대 체제 속의 컨텍스트 속에서 동아시아 각국의 근대 텍스트로 변한 모습을 살펴보며, 동아시아 고대 텍스트를 고대의 컨텍스트 안에서 새롭게 역사상을 구축하자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만들어진 고대'는 동아시아 고대사가 명확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만들어졌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제목이다. 이 글에서는 하나의 민족으로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묶기 위해 이데올로기로 '민족'을 이용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니까 단일민족이란 표현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짙은 말이다. 생각보다 꽤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필자는 동아시아의 역사적 고대가 그 지역 근대 국민 국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대'로 변용된 현상에 대해 세밀하게 파고 들어가 입증한다. 독자로 하여금 그의 생각에 동조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학자이다. * 일국사 - 국민국가를 이념상의 구성원으로 삼는 현대 국제 사회에서 지배적인 사고. 국익을 모든 가치에 우선시하는 사고를 역사에 투영시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