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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와 난민 소년 ㅣ 사유와공감 청소년문학 5
이상미 지음 / 사유와공감 / 2026년 1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히르는 아민이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과 다르다는 걸.
"목숨을 걸어본 적도 없겠군.'
p.27
"왜 일식이 일어난 걸까?"
타히르가 묻자, 바쉬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태양이 눈을 가리는 이유는 신이 우리를 시험하는 시간이라서래."
'신은 우리의 무엇을 시험한 걸까?'
타히르는 라나 누나가 어깨를 감싸며 해준 말을 떠올렸다.
"태양이 사라져도 괜찮아. 언제나 다시 돌아오거든."
pp.40~41
아빠는 오늘 하루 살아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하루 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고. 엄마도 덧붙였다. 떠나더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편히 머물 곳을 찾기 위해 헤매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안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사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타히르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고.
pp.59~60
"자, 쓰면서 말하는 거야. 네 생각을 적어. 그게 네 방패가 될 수 있어."
타히르는 글이 방패가 된다는 말을 선뜻 믿기 어려웠다. 그래도 그때의 마음을 적어보기로 했다.
- 나는 폭군 아니다. 나는...... 그냥 새다. 떠나는 새, 떠나야 하는 새
글자를 다 쓰고 나자, 눈두덩이 뜨거워졌다. 우주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타히르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pp.101~102
'막아야 하지 않을까? 저 사람들이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깨고 부수는데?'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빠가 타히르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타히르, 살아야 기억도 하고 지킬 수 있다."
p.125
'책임'
아이들은 동시에 숨을 죽였다. 교장선생님은 분필을 내려놓고 천천히 말을 꺼냈다.
"너희가 한 행동, 다 안다. 피켓을 든 것도, 글을 올린 것도. 학교는 정치와 멀어야 한다. 하지만 책임이란 건 남이 대신 져주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끝까지 버텨야 한다. 그래야 말이 힘을 가진다."
교장선생님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지켜야 할 게 있으면 지켜라. 남이 지켜주길 바라지 말고."
"인권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을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
p.135
이상미, <길가메시와 난민 소년> 中
+) 이 작품은 난민 소년이 우리나라의 중학교에 전학을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라크의 급박한 정세에서 겨우 탈출한 난민 소년 '타히르'는 한국에 거주하기 위한 '난민 심사'를 앞두고 있다.
부모님은 타히르에게 종종 어디에서건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편히 머물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히 여기라고 말해준다.
한국 학교에서도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아이들과 잘 지낼 것을 바랐는데, 이들의 마음과 달리 타히르는 친구들과 오해가 생겨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타히르와 같은 반에는 파키스탄계 한국인 '아민'이 있다. 외모는 타히르와 비슷한 결을 지녔지만, 아민은 한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타히르와는 조금 다른 입장이다.
학급 회장인 '세아'는 아민과 어렸을 때부터 친구라 늘 아민의 입장을 배려하고 잘 헤아려준다. 그러다가 타히르가 전학 오면서 아민은 세아가 타히르를 챙겨주는 모습에 신경이 곤두선다.
세 사람의 관계는 오해가 쌓이면서 본의 아니게 불편해진다. 이때쯤 타히르는 전쟁의 기억 때문인지 고대 신화 속 인물 '길가메시'와 '엔키두'에 대한 환상에 시달린다.
그로 인해 타히르는 반 친구들과 아민에게 더 오해를 받게 되고, 학교에서는 타히르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며 난민 심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 작품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며 이어지는 구조로, 타히르나 아민이 보는 환상이 정말 환상은 맞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친구에게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상처가 되는지 알지 못하고, 장난으로 놀리려고 올린 영상이 학폭위를 불러오며, 농담으로 여기던 수준은 어른들에게 알려져 큰 사건으로 확대된다.
난민 소년으로 낯선 한국에서 어렵게 버티는 타히르, 한국인이 맞는데 외국인 같은 외모 때문에 오해받는 아민, 같은 반 친구를 배려하며 감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곤해지는 세아 등의 입장과 심리를 잘 그려냈다.
정체성과 우정에 대한 청소년들의 불안한 마음과 복잡한 생각을 섬세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편견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 친구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이 용감하게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도 희망적으로 담아냈다.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모습, 서로의 마음과 입장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모습, 우정을 지키는 모습 등이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현실과 환상의 반복이 소설의 전개를 이끌면서 읽는 이에게 고대 서사시와 영웅의 삶에도 흥미를 갖게 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