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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방 ㅣ 고래책빵 고학년 문고 24
엄은희 지음, 채지원 그림 / 고래책빵 / 2025년 12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친구들은 채은이의 인싸그램 속, 강의하는 교수님의 사진을 보고 멋지다고 했다. 그리고 채은을 조금 부러워했다. 채은은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기분을 조금만 누리고 싶었다. 매번 다른 친구들을 부러워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채은의 비밀의 방은 더 많은 비밀을 만들어냈다. 채은이 인싸그램에 만든 비밀이 많아질수록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p.26
정애 씨는 글로 쓰는 것도 부족해 말도 참 많은 사람 같았다. 채은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정애 씨가 편했다. 투명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주현이 부럽기도 했다. 자신은 언제부터 깨지기 쉬운 그릇을 감싸듯, 겹겹이 포장하게 되었는지 답답하고 거추장스러웠다.
채은은 '내가 선택한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하는 게 뭐가 잘못이야?'라고 스스로 속삭이며 사실이 탈로 날까 봐 불안감을 애써 눌렀다.
pp.32~33
"채은아, 확실한 건, 뿌리가 자라고 키가 크려면 분갈이는 꼭 해야 한다는 거야. 사람도 살면서 몇 번의 분갈이를 거치며 살아가게 된단다."
"채은아, 할머니가 너에게 해주셨던 말들을 기억하면 함께 있는 거나 다름없어. 신부님은 말이 곧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어이쿠, 채은이에게 조금 어려운 말이려나."
"전, 말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속마음이 불쑥 튀어나와 채은이 자기 입을 손으로 가렸다.
"아마도 말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괜찮은 말을 마음속에서 만들고 있는 과정일 거야."
pp.60~61
"주현, 너네 엄마는, 널 어른처럼 대하는 것 같아."
채은이 애써 부러운 기색을 감추며 말했다.
"가끔은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 하지만 엄마는 세상에 태어난 이상 그냥 사람과 사람이래. 몰라, 어려서부터 그래서 난 익숙해."
p.80
엄은희, <비밀의 방> 中
+) 이 책은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가족, 즉 평범한 가정을 꿈꾸는 '채은'이 등장한다. 베트남 출신 엄마와 말과 행동이 느린 아빠는 채은에게 부담스럽고 부끄러운 가족이다.
다른 친구들처럼 보통의 엄마 그리고 아빠와 가족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채은은 우연히 SNS에 올린 사진 한 장으로 그 마음을 현실화한다.
처음에는 그 사진을 가족사진으로 오해한 친구들에게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인싸그램 속 채은이의 모습은 진짜가 아닌 꾸며낸 것으로 도배되기 시작한다.
채은이는 인싸그램에서만큼은 꿈꾸던 가족을 이루고 원하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바람이 온라인에서 이뤄질수록 채은이의 거짓말과 불안감은 같이 증가한다.
이 동화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진실 앞에 입을 다무는 지점에서 거짓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걸 감추기 위해 또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또 거짓말을 한다. 나중에는 그게 거짓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스스를 합리화한다.
온라인상에서 거짓으로 자기 삶을 포장해 위안을 받으려고 하는 건 자기 삶의 기준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두기 때문이다.
채은이의 비밀의 방도 그렇게 만들어졌고, 채은이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시선과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채은이의 마음이 그 방을 유지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럴수록 양심과 불안감에 흔들리던 채은이는 결국 비밀의 방에서 나오는 선택을 한다. 이는 타인의 시선과 타인을 향한 부러움보다, 자기 삶에서 자신의 기준이 더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걸 알려준다.
남의 눈과 남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생각과 가치관이 인생에서 더 가치 있다는 걸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다문화 가족은 '특별히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는 걸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옳지 않은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올바른 '레티베(채은이 엄마)', 말과 행동이 조금 느린 편이라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오해받지만 다정하고 배려심 많은 '만보(채은이 아빠)'의 모습을 통해 정의로운 사람과 배려하는 사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채은이의 친구 '주현'이는 엄마인 '정애'와 친구처럼 지낸다.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대하는 주현이네 가족을 통해 저자는 어른과 아이가 아닌 사람 사이의 평등한 관계도 보여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각자의 무늬를 간직한 가족의 모습을 인정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배운 책이었다.
SNS에 집착하는 아이들의 속내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고, 그 마음이 궁금한 어른들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