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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을 구워냅니다
김나을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그나저나, 너 술 좋아해?"
"술?"
운은 문득 치고 들어오는 윤오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이장님 생일 잔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달릴 거거든."
"무슨 생신 잔치를 대학교 엠티처럼 말해?"
p.58
활짝 열린 대문 너머 빈 주택의 바깥 마루에 멍하니 앉아 지붕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만 보고 있던 여자. 아주 한참이나 그 자리에 앉아서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희한하게도 그 모습이 고요하면서도 불안정해 보여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 무채색이었어. 삶의 희로애락을 다 잃어버린 여든의 노인 같았어. 아, 내 얼굴이, 내 표정이 이렇게 텅 비었었나 싶었어. 차라리 영정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할머니 표정이 더 생기 있어 보이더라고.'
pp.74~75
네잎클로버는 행운, 세잎클로버는 행복을 의미하거든.
그래서 할머니는 세잎클로버가 좋단다.
행복. 그건 평범해 보이는데,
실은 그게 행운보다 중요하고 어려운 거거든.
생각보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p.103
소율이 또박또박 말했다.
"당연하죠. 연준이도 삼촌이 산타 분장한 거 모르는 척하기로 저랑 약속했어요. 엄마 아빠랑 삼촌이 노력했으니까!"
'어른 동심은 아이들이 지켜주고 있던 거네.'
pp.219~220
어떤 날엔 괜찮았고. 어떤 날엔 불안의 둑이 터져 무너져 내렸다. 모두가 완주한 마라톤에서 텅 빈 길에 홀로 남아 아직도 뛰고 있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남들만큼, 아니면 그 이상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방향이 잘못되었을까. 내가 했던 선택은 다 틀렸나. 언제부터 여기에 혼자 남았지.
애매하게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질 수도 없었어. 손에 쥐어지지도 않는 것을, 겨우겨우 부스러기를 잡고서 이 자리를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p.239
"누가 친구 하나 보러 여기까지 와. 좋아하는 사람 보러 온 거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안 괜찮아. 네가 없으니까, 갈 데가 전혀 없어. 정말로."
그가 평소답지 않게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유운... 사람은 왜 지나고서야 알까. 네가 없는 게 어려워. 좀처럼 쉬워지지 않아."
p.286
"윤오야,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 수 있더라. 세상은 내가 있는 곳이, 내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니야. 남들이 말하는 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아. 봐, 내가 회사를 나온다고 해도 내 세상이 사라지진 않았어. 네가 회사를 나왔다고 해서 무언가 포기한 것도, 실패한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괜히 집 한구석에 틀어박혀서 허송세월 보내지 마. 지금부터라도 남들이 괜찮다, 좋다 하는 거 말고 네가 좋은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그걸 생각해 봐."
p.323
김나을, <오늘도 행복을 구워냅니다> 中
+) 이 책은 베이커리와 음료를 파는 어느 시골의 과자점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행복과자점'을 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도시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여러 번 실패해도 계속 시험을 보며 애를 쓰던 '유운'. 어느 날 유운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할머니의 시골집을 베이커리 카페로 고쳐 운영한다.
공허한 눈빛과 무표정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숨 쉴 공간을 찾아 행복과자점을 오픈한 유운. 그곳의 단골손님인 '김윤오'는 갑자기 그녀에게 친구 하자고 말을 건네고 어색하지만 둘은 친구가 된다.
윤오와 친구가 되면서 유운은 마을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게 되고 도시에서는 겪지 못한 즐거운 경험도 하게 된다.
이 소설에는 사랑을 잃었다가 다시 찾으려는 사람, 지난 사랑을 미련 없이 놓으려는 사람, 현재의 감정이 사랑임을 확인하며 사랑을 시작하려는 사람 등이 등장한다.
하지만 소설 속 사랑 이야기는 부차적인 소재일 뿐이다. 중요한 건 각자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그들의 삶에서 내린 많은 결정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묘사하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주요 인물 외에도 행복과자점을 방문하는 손님들, 그리고 유운과 윤오의 지인들의 이야기도 그리고 있다.
죽도록 노력해서 공무원이 되었으나 지방에서 근무하며 그 일이 과연 자기가 원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이도영', 귀농해 딸기를 기르지만 그걸 선택하기까지 두려워했던 '박은정', 오래 공부하며 대학원까지 다녔지만 결국 카페를 경영하는 '도현서' 등이 그들이다.
그 외에도 과자점에 방문하는 할머님들, 과자점 베이커리에 푹 빠진 꼬마들, 유운의 부모님과 친한 친구 소진의 소소한 이야기도 다정하게 담고 있다.
시골집의 작은 카페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인물들은 삶의 방향을 새로 정하고 인생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게 쉽지 않은 결정이기에 고민하며 방황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천천히 자기만의 길을 찾아간다. 소설은 인생의 수많은 고민과 걱정 앞에서 흔들리던 사람들도 어떻게든 자기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무한 긍정이나 낙관만 담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판 인생을 실어두었다고 생각한다. 인물들이 흔들리고 방황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기에 현실적인 소설이다.
그러나 결국 이들의 선택에서 희망과 사랑을 발견할 수 있기에 행복하고 따뜻한 소설이기도 하다. 우여곡절이 많은 현실을 사는 독자 입장에서 이들이 어렵고 힘들게 결정한 모든 선택을 응원한다.
그 선택의 결과를 따지기보다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이들이 견뎠을 시간들을 보듬어주고 싶은 소설이었다. 따뜻한 소설을 읽으며 추운 겨울밤을 잘 보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