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체격과 유난히 작은 얼굴,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동작에 금세 멍해지는 표정. 산에를 오늘 처음 본 애들이 산에를 장애인이라고 말한 이유는 겉으로 보이는 저 모습밖에 없을 거다. 어렸을 때도 산에는 지금처럼 걷고 걸핏하면 저런 표정이었다. 그때는 아무도 산에가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모두가 산에는 기분 좋으면 저렇게 걷고, 그냥 입을 잘 벌린다고 여겼다. 그때는 단지 다를 뿐이라 생각했던 모습이 지금은 '장애'라는 분명한 이름을 얻은 셈이다.
p.8
그때까지도 산에는 그 자리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나라도 산에 손을 붙잡고 "산에야, 이제 그만 가자."라고 말한다면 산에는 순순히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산에를 바라보는 윤하의 눈빛이 나현이의 눈빛과 똑같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p.49
"산에야."
"응?"
"너, 왜 이 학교로 전학 왔어?"
"... 어, 어. 내가 너무 똑똑해서, 너무 똑똑해서 영재. 장애아 영재. 어... 그래서 일반 학교에 다녀야 한대. 나 때문에 정말로 특수학교에 다녀야 하는 애가 못 다닌다고."
p.67
"민준아, 너는 햇살이랑 대화가 돼? 말이 통해?"
"뭐,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가 훨씬 더 많긴 하지."
"... 그런데, 왜 맨날 같이 다녀? 너 햇살이가 하자는 거 다 받아 주잖아."
"... 다 받아 주는 건 아니야."
민준이가 나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햇살이가 먼저 나한테 말 걸어 주고, 놀자고 했으니까... 햇살이만 그랬어."
p.84
"김햇살 장애인 아닌데요. 우리랑 수업 다 듣고, 지네 엄마도 햇살이 장애인 아니라고 그랬어요."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교감 선생님의 목소리가 커졌다. 지후의 태도에 조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후는 그보다 더 화가 난 거 같았다.
"어떨 때는 똑같이 대하라고 난리고, 이럴 때만 장애인이에요?!"
p.117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우정을 맺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동정하고 보살펴주는 대상으로는 봐 주는데, 우정까지는 참 어렵지요. 왜냐면 우정은 동등한 인간관계거든요. 그럼에도 제가 이런 제안을 했을 때 우리 친구들 모두가 데려올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 제가 눈물 날 것처럼 좋았습니다."
p.139
정은주 글, 김푸른 그림, <우리가 봄을 건너는 법> 中
+) 이 동화는 요즘 초등학생들의 교실 내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매 학기 초만 되면 친구 사귀는 것이 힘들어 긴장하는 아이들이 많다. 말로만 듣던 그런 상황을 저자는 이 책에서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아 자기 자신을 챙기기에도 바쁜 '선아' 앞에 어느 날 갑자기 유치원 때 단짝이었던 '산에'가 나타난다.
유치원 다닐 때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는데 산에가 '윌리엄스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앓고 있다는 걸 어른들이 알게 되면서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인 현재, 선아네 학교로 산에가 전학을 온다. 이미 선아네 반에는 자폐 증상을 보이는 '햇살'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산에까지 같은 반으로 배정되면서 아이들은 당황스러워한다.
물론 햇살이는 장애 판정을 받은 적이 없지만 아이들과 선생님은 햇살이의 특별한 행동에 종종 곤혹스러워한다. 이때 선생님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햇살이가 따르며 좋아하는 친구 '민준'이가 등장한다.
민준이는 이전에 학교 폭력 사건과 연관된 적이 있어서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는데 그런 민준에게 햇살이는 좋은 친구가 된다.
선아와 산에, 햇살과 민준이 한 반에서 지내면서 아이들은 여러 상황을 만나게 된다. 급식실에서의 소동, 선아와 산에의 관계에 대한 소문, 민준과 산에가 햇살이를 괴롭히는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는 사건 등이 그것이다.
또한 그 사건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확인하고 진실을 파헤치려는 선아와 반 친구들의 노력, 어른들이 바라보는 장애 학생에 대한 편견, 어른들의 미숙한 대응 방식 등등도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동화를 읽는 내내 마음이 여러 번 일렁였다. 장애와 비장애, 편견과 오해, 그리고 배려와 이해, 우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사실적이고 감동적으로 담아낸 동화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 초등학교 교실을 스케치한 듯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느낌이다. 또한 편견과 혼란으로 산에와 햇살이를 대하던 아이들이 이들을 친구로 대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읽는 내내 아이들의 장하고 멋진 모습에 푹 빠져 있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또한 장애를 지닌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잘 가르쳐 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에게 친구를 사귄다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크고 깊은 건지 알려준 책이기도 하다. 초등학생들의 학교생활 역시 하나의 사회생활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친구를 사귀고자 애쓰며 고민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사회생활을 잘하고자 애쓰는 어른들과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무엇이 편견이고 무엇이 배려일까. 또 친구가 되어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친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동화는 그 고민과 아픔과 희망을 함께 담아낸 작품이기에 초등학생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또한 꼭 초등학생이 아니더라도 청소년을 비롯한 어른들에게도 한 번쯤 읽어볼 감동적인 동화책으로 추천해 주고 싶다.
누가 읽어도 가슴 찡하게 전하는 감동과 마음 깊이 생각해 볼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라고 본다. 장애와 학교 폭력 등의 민감한 문제를 현실적이지만 인간적으로 잘 다룬 성장 동화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