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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엔딩 라이프
정하린 지음 / 한끼 / 2025년 11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든가, 불행했으면 좋겠다든가 그런 건 잘 모르겠어. 너를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으니까."
"..."
"근데 그건 알아. 네가 나쁜 애는 아니라는 거. 나는 나쁜 사람 아니면 다 말해 주거든. 조심하라고."
p.33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저승사자는 그저 '신의 뜻'이라고 하니 신이 부를 때까지 이 세상에 남아 있어야겠죠."
몇 번이고 죽어도 죽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싶어도 세상에 남아 있어야만 하는 게 신의 뜻이라고? 신이 부를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 삶은 어떤 형벌보다 끔찍한, 고통스러운 지옥 그 자체였다.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말했다.
"그러니까 어차피 못 죽는 거 그냥 조금만 더 살아 보자고요. 그러다 보면 신이 부를 날이 올 테니 그때까지 우리 같이 견뎌 봐요."
pp.56~58
"사람이라면 절대 못 그래. 신이니까 모르는 거야.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도, 남편 잃은 아내의 슬픔도,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거라고! 신도 막상 살아 보면 다를걸?"
그녀는 속사포처럼 설움을 토해 냈다.
"신은 인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얼마나 고통 속에 사는지, 얼마나 아프게 사는지 전혀 모르잖아! 자기들은 맨날 뒷짐지고 구경만 하면서 왜 늘 인간에게만 견디래?"
p.91
"네가 뭔가를 받는 것에 익숙지 않은 건 알아. 그래도 이럴 땐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누군가의 호의를 고맙게 받는 것도 예의거든."
"..."
"그리고 다음에 너도 뭔가를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주면 되지. 그 사람한테 다 갚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도와줘도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그렇게 도움이 돌고 도는 거야."
p.119
"너 말이야. 솔직히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거나 뭐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없는 줄 알았는데, 오늘 네 얼굴을 보니까 알 것 같아. 나는 네가 평온하길 바랐나 봐."
"오랜 시간 너의 고통을 지켜봤으니까."
"봐, 어딘가에는 이렇게 너의 평온을 바라는 사람도 있지? 그러니까 스스로를 너만의 세상에 가두지 말고 살아.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어딘가에는 너를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
p.124
"나는 늘 아팠어요. 그리고 아픈 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고요."
"이미 아파 봤다고 해도, 늘 아팠다고 해도, 또 아플 수 있는 법이니까."
p.137
"사는 게 참 힘들다."
"뭘 해도 미움받기는 쉬운데, 사랑받기란 쉽지가 않더라."
"원래 그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우니까."
p.295
정하린, <네버엔딩 라이프> 中
+) 이 소설에는 삶에 지쳐 여러 번 죽음을 선택한 이들이 등장한다. 여러 번 선택한 죽음이 되는 건, 죽지 못해서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도 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저승사자들이 존재한다. 때가 되면 사람들을 저승으로 인도해야 하는 존재들이 바로 저승사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닌데, 아직 신이 부르지 않았는데 끝없이 죽음을 선택한다.
그런 사람들 중 저승사자와 인연이 되어 이 생을 다른 삶의 패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 서은이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어렸을 때 엄마를 잃고 아빠와 둘이 살다가 아빠마저 사고로 잃은 서은이는 가난으로 인해 아프고, 세상의 폭력으로 인해 아프고, 학교 폭력으로 인해 아프다.
그래서 서은이는 이번 생을 스스로 마감하려 하는데 문제는 죽어도 죽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혼란스러울 때 저승사자가 인도한 장소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생에 대한 생각을 돌아보게 된다.
저승사자 또한 인간에게 감정을 두지 말아야 하지만 안타까운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연민 등 복잡한 감정이 생긴다.
이 작품에는 저승사자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그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상황, 그들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들이 제시될 때마다 요즘 현대인의 모습을 담은 듯해 마음이 아프다.
반면에 자연스러운 죽음 앞에서 저승사자의 인도를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지만, 끝까지 저항하며 이 생을 더 이어가려 애쓰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지금 살아가는 생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또한 사람 사이 마음이 전해지고 전해지듯, 돌고 도는 인연은 한 생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생, 또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걸 신비롭게 풀어냈다. 마치 드라마 시리즈를 본 느낌이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들과, 그들이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저승사자의 이야기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해 흥미있게 풀어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