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로 빚은 인문학
박운석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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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술은 예로부터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하여 백 가지 약 가운데 으뜸으로 여겼고, 동시에 백독지장百毒之長이라 하여 모든 독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으로 여겼다. 곧, 술이 적절하면 약이 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의미다.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은 술자리에서도 예절을 엄격히 지켰다. 정약용이 둘째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러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참다운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는 것이다. 저 소가 물을 마시듯 하는 자들은 술이 입술이나 혀를 적실 틈도 없이 곧장 목구멍으로 넘기니 무슨 맛을 알겠는가.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더러운 것을 토하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자들에게 무슨 정취가 있겠는가.

pp.14~17

우리 술은 술 이름 하나만 봐도 문학적이고 철학적이다. 이색적인 이름을 가진 술은 도대체 어떤 맛과 향이 날지 궁금해진다.

대표적인 술이 이화주梨花酒다. 이화주는 배꽃을 넣어 빚는 술이 아니라 배꽃이 필 무렵에 빚는 술이다.

<주방문>에 수록되어 있는 석탄주惜呑酒도 독특한 이름을 가진 술이다. 애석할 석惜, 삼킬 탄呑, 술 주酒를 써서, 맛과 향이 뛰어나 차마 삼키기 안타까운 술이라는 말이다.

백수환동주白首還童酒는 불로장생을 꿈꾸는 옛사람들의 바람을 보는 것 같아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이름이다.

pp.38~39

와인은 포도가 재료이기 때문에 완성된 술에서도 포도 향이 난다. 당연한 일이다. 보리의 싹을 틔워 말린 몰트와 홉을 주재료로 만드는 맥주는 곡물 맛과 함께 홉에서 비롯된 향이 특징이다.

전통주는 다르다. 쌀, 물, 누룩만으로 만드는데도(포도를 넣지 않아도) 완성된 술에서 포도 향이 난다. 매실을 넣지 않았어도, 잘 빚은 단양주에서는 매실 향이 난다.

잘 빚은 술에서만 느껴지는 맛과 향이다.

pp.59~60

<동의보감>에서는 '술이 깨고 취하지 않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밀실 안에서 뜨거운 물로 세수하고 머리를 수십 번 빗질하면 깨고, 소금으로 이를 닦고 더운 물로 양치하면 세 번만 해도 통쾌해진다.

현대사회에서는 알코올에 소금이 들어가면 물이 된다는 과학적 원리로 설명할 수 있겠다.

p.73

사케는 쌀을 얼마나 깎아냈느냐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많이 깎을수록 술의 가치가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정미율이 50% 이하일 때 다이긴조라고 하는데, '닷사이 23'은 정미율이 23%라는 뜻이니 쌀의 77%를 깎아낸 셈이다.

사케가 쌀을 깎아 내어 만드는데 반해, 우리 전통주는 쌀의 단백질과 지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우리 전통주는 쌀을 깎아 내지 않고 깨끗하게 씻어 그대로 사용한다.

pp.108~109

"전통주란 우리가 주식으로 삼고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주재료로 하고, 물 이외의 인위적인 가공이나 첨가물 없이 누룩을 발효제로 하여 익힌 술을 지칭한다."고 했다. 고유한 방법과 전통성을 간직하면서도 우리 땅에서 나는 자연산물을 주재료로 하여야 전통주라고 하는 것이다.

p.158

박운석, <전통주로 빚은 인문학> 中

+) 이 책은 전통주 교육 전문가인 저자가 전통주를 빚는 과정을 비롯해, 전통주와 관련된 설화, 전통주 명칭, 전통주와 전통문화와의 관련성 등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술이라는 틀에 전통주를 넣기 보다 인문학적 시선으로 전통주와 전통문화와의 연계성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여러 고전 문헌의 기록을 근거로 다양한 전통주에 얽힌 사연을 역사, 문화적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어렵게 쓴 책이 아니기에 전통주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이 읽어도 이해하기 쉽다.

에세이 형식으로 작성된 글들을 모아 엮어서 전통주에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의 술 문화에 대해서도 접할 수 있기에 흥미롭게 읽으며 공감했다.

특히 맥주와 와인, 사케 등과 비교하여 전통주가 갖고 있는 장점을 살린 부분에서는 더 공감하며 동의했다. 담백하나 깊이 있는 전통주 제조법을 확인할 땐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다.

전통주를 쌀과 누룩과 물만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언급에 조금 놀랐다. 꽃 등을 재료로 사용한 전통주도 있겠지만, 저 세 가지만으로 깊은 맛과 향긋한 향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 책에서는 그간 들어보지 못한 다양한 전통주를 만날 수 있는데 각각의 술에 얽힌 문화와 역사가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전통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친밀함으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글이라고 느꼈다. 전통주를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선을 에세이 형식으로 가볍게,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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