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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 ㅣ 소설의 첫 만남 32
백온유 지음, joggen 그림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엄마가 '인자한 엄마 말투'를 쓰는 것도 아니꼬웠지만, 평소에는 친하지도 않으면서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만 가게에 와서 애교를 부리며 음식을 털어먹는 애들이 더 얄미웠다. 하지만 나는 회장이니까 끝까지 웃으면서 애들을 대한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꽤 어른스러운 편인 것 같다.
p.18
나는 이서우를 관찰하다가 민망해지기 일쑤였다. 왜긴 왜야. 이서우를 좋아하니까 그렇지, 뭐. 인정하니 당당해졌고 어깨를 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서우와는 좀처럼 길게 말할 기회가 없었다. 그나마 내가 회장이니까 뭘 챙겨 준답시고 문자라도 할 수 있었지,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지도 않았고, 그 애는 학원도 독서실도 안 다녔다.
주말에 단둘이 도서관에 가자고 할까 하다가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 대신 영화 보러 가자고 할까, 아니면 마라탕을 먹으러 가자고 할까 망설이기만 하다가 방학이 시작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답답한 면이 있는지 십오 년 만에 처음 알았다.
pp.22~23
"미안해."
"아니야. 나야말로 맛있게 다 받아먹어놓고 이래서 미안해. 오늘은 내가 맛있는 거 사 주고 싶었는데, 너는 거의 먹지도 못하더라."
"미안해."
내가 한 말인지 이서우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더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이서우가 내게서 멀어지는 동안, 나는 바보같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pp.68~69
"근데 있잖아, 너 그럼 나도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럴 리가 없잖아. 엄마가 분식집 하기 전까지는 내가 너한테 더 많이 얻어먹었는데 그럼 네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한 거 아니야?"
"아닌데, 나는 너랑 있으면 재밌어서 같이 밥 먹자고 조른 건데."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이서우랑 있으면 비슷해. 그냥 "
"그냥 뭐?"
"그냥 좋아서 그런 거지 뭐."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겠네."
"용기가 안 나."
"용기를 내면 되겠네."
pp.71~72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결국 재채기하듯 내뱉고 말았다.
"냠냠!"
pp.78~79
백온유, <냠냠> 中
+) 이 소설 속 중학생 주인공 '채원'이는 학급 회장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회장직을 맡으며 엄마처럼 다정하게 챙겨줘야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체득한다.
같은 반 '서우'가 그런 친구이다. 준비물도 잊어버리고 숙제도 까먹는 아이라 회장으로서 챙겨주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고 나중에는 그런 자기감정이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걸 깨닫는다.
어느 날 서우가 끼니를 부실하게 먹는 것 같아 그때부터 온갖 핑계를 대며 서우에게 음식을 전달한다. 이미 가게를 하고 있는 엄마의 떡볶이를 개발 중이라며 맛 평가를 부탁하고, 그 외 다양한 음식들을 도시락으로 싸와 서우와 함께 먹는다.
그러다가 자신이 급식 카드를 사용하는 서원이의 상황을 모르는 척하며 다가선 게 오히려 서우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둘은 어색해진다.
하지만 편견 없이 좋아하는 마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던 '윤영'이의 조언 덕분에 채원이는 서우에게 진심을 이야기한다. 물론 채원이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 작품은 '냠냠' 소리가 이렇게 반갑고 행복한 표현이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냠냠' 먹을 때 행복해지는 마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작품이다.
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편견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싶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그런 설렘을 매우 잘 그리고 있다.
채원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하면 같이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 순간까지 맛있게 만들어낸 소설이었다.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느꼈다. 특히 결말에서 두 아이의 솔직담백한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워서,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어쩌면 사랑이란 맛있는 한 끼를 행복해하며 함께 나누는 게 아닐까 돌아보게 해준 소설이었다. '냠냠' 맛있는 소리로 사랑과 행복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풍경을 본 듯해 흐뭇했다.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지 배울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 소중함의 가치를 진솔하고 따뜻하게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