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남긴 365일
유이하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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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인간은 잔인해서 자신과 다른 부류를 보면 거부한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상대방은 내게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색깔이 안 보인다니 섬뜩해. 저 녀석은 정상이 아니야.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수많은 거절을 경험한 나는 친구 사귀는 법을 알지 못했고, 언제부턴가 비뚤어져서는 친구 같은 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p.18

나는 타인과 얼마나 거리를 둬야 하는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싫어한다는 생각도 못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내게 했던 불쾌한 말들을 그대로 돌려줘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p.24

아라타는 허둥지둥 노트를 돌려주면서 유품이면 유품이라고 말을 하라며 내 팔을 툭 쳤다.

"소중한 거잖아!"

"그런가?"

"당연하지. 넌 그런 쪽으로는 둔해 빠졌다니까."

"그냥 평범한 노트잖아."

"앞으로 가에데 선배가 쓴 글씨를 못 보는데?"

p.67

아라타가 노트를 거머쥐고 싱글벙글 웃으며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고 하기에 허둥지둥 말렸다.

"안 볼 거야?"

"안 봐. 미리 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거든."

늘 그랬다. 바로 코앞의 미래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p.90

지독한 놈이다. 원래대로라면 훨씬 더 슬퍼하는 게 맞다. 하루하루 당연하게 숨을 쉬던 사람이 죽었다. 당연히 슬퍼하고, 당연히 울어야 한다.

"감정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뿐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슬픔이 복받치는 타이밍은 저마다 다르니까."

pp.104~105

"사람의 뇌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억에도 용량이 정해져 있다."

p.138

"유고가 혼자 남는다고. 삶의 기쁨도 모르고 어른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네 걱정만 했어. 자신이 죽고 나면 자기 존재를 잃어버릴 정도로 즐거운 기억만 잔뜩 만들고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했어."

p.313

실은 줄곧 좋아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같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 감정에 너무 익숙해져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네가 없는 내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네가 누구와 사귀든 결국엔 내게로 돌아올 거라고, 우리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기에 굳이 말로 하지 않았다.

p.338

유이하, <네가 남긴 365일> 中

+) 이 소설에는 무채병에 걸려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보던 '유고'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유고에게는 두 살 위 소녀 '가에데'라는 유쾌하고 발랄한 친구가 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둘이 꼭 붙어 다니던 소꿉친구였는데, 어느 날 가에데가 병에 걸려 죽으면서 이 작품은 시작된다.

그리고 가에데가 죽은 다음날부터 유고에게 갑자기 세상의 빛깔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빛을 볼 수 있다는 건 희망적이었지만, 유고는 자신도 결국 1년 뒤에는 죽는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절망에 대해 깊이 인지하지 않던 유고에게, 가에데가 남긴 365개의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가 전달된다.

처음에는 친구의 소원인 듯하여 별생각 없이 하나 둘 실천해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유고는 친구도 사귀게 되고 감정의 변화도 경험하며 삶의 소중함도 느끼는 아이로 변해간다.

이 소설은 우정과 사랑을 아프지만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병에 걸린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가 슬프게 느껴지지만, 365개의 버킷리스트를 행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생의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기에 슬프고 아프지만 따뜻한 감동을 주는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로 혼자만 지내서 친구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유고를 보며 연민을 느꼈다. 그 상처가 자기의 본래 감정도 외면하게 만든 듯하여 마음이 아팠지만, 누구보다 그런 모습을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명이라도 곁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고 수용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무척 행복한 일이다. 그게 우정이든 사랑이든 중요하지 않다. 그런 존재가 있음으로써 삶을 사는데 큰 버팀목이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유고는 사랑의 색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때쯤 유고의 주변에는 친구들이라는 수많은 빛깔도 존재한다. 인생의 다양한 색이 유고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365개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생의 즐거움을 볼 수 있다. 지루한 일상을 환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일들을 통해 스스로의 새로운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공감하며 반겼다.

청소년 로맨스 소설이자, 자아를 확인해가는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친한 친구로 이어지는 과정이 어떤 건지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감성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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