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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 소소한 일상에서, 사람의 온기에서, 시인의 농담에서, 개정판
전영애 지음 / 청림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인간의 고통에 눈 밝기에 거짓말인 그런 글을 쓰는 황당한 사람 한 명이, 또 그런 글과 그런 인간이 소중한 줄 알기에 몇 장의 종잇장을 찾아 헤매는 황당한 사람 한 명이 이 삭막한 세상에 빛을 밝힌다. 허구로써 현실을 감내해보려는 것, 그것이 문학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또 그런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인문학의 진면목일 것이다.
pp.22~23
무얼 좀 도와드리는 시늉을 하면 고맙다는 말 다음에 덧붙인다.
"괜찮아요. 이건 제 일인걸요."
내 일, meine Arbeit 혹은 my job. 사실 내가 독일에서 가장 자주 듣고 감탄하는 말이다.
"제 일인걸요." 현실인식과 책임감과 자긍심까지 배어 있는 이 말을 나는 사랑한다.
p.41
자녀들을 노동에서 소외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노동을 익숙한 것으로 만들고 거기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아 느낄 줄 아는 것, 그렇게 하도록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일이야말로 삶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 삶의 지혜 중에서도 지혜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갖추어주어야 할 두 가지. 괴테가 요약했다. '뿌리와 날개'라고. 우리의 상황으로, 현실로 아주 낮추어 - 사랑에 기본을 두고- 의역해본다. 노동과 격려일 것 같다.
pp.59~60
젊었을 때, 온 세상이 캄캄해서 앉은뱅이처럼 앉아만 있었을 때는 누가 새끼손가락 하나만 잡아주면 일어설 것만 같았다. 그런데 세상은 때로 절벽 끝을 붙잡고 매달려 있는 사람의 손을 짓밟듯이 가혹했다. 어쩌면 세상의 정말 중요한 일들은 바로 외로움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런 이치를 젊었을 때는 몰랐다.
p.116
홀레 씨는 강연문에서 자신이 왜 평생 이윤 없는 문학에 관심을 가졌는가를 이야기하고는 이런 구절로 끝맺고 있었다.
"문학은 사람을 만듭니다."
p.143
병 깊은 어머니가 딸에게 시킨 것이 그저 마라톤이었을 리 없다. 세상을 헤쳐갈 힘을 길러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 험한 세상에서 딸이 어떻게든 스스로 튼튼한 두 다리로 서고, 세상을 헤쳐갈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무얼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야 사라질 리 없으니 길은 스스로 찾을 것이다.
p.213
책에서 나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생각을, 많은 생각을 하며 읽는다. 공감하고 받아들이기도 하고 낯설어하며 물리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세상에는 이런 생각도 있구나 하며 조금 사고가 열리기도 한다. 그렇게 열리는, 어쩌면 열려야 하는 사고의 지평은 무한하다.
p.257
전영애, <인생을 배우다> 中
+) 이 책은 약 10년 전에 출간된 책을 재출간한 것으로, 괴테 학회가 수여하는 '괴테 금메달' 수상자인 저자가 인생에서 소중하게 여겨야 할 순간들에 대해 써 내려간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독일에서 연구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겪은 복잡한 감정과 힘든 일상에서 얻은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또 문학과 음악 등의 예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언제 떠날지 모를 사람들과의 인연에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존재들에게서 얻은 감동도 언급한다.
책은 에세이 글과, 그 글의 소재를 연상하게 하는 흑백 사진과, 아름다운 문장을 필사할 수 있는 줄글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인생의 어려움을 알기에 그 시간을 견뎌내는 이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의 문장이 많이 담겨 있다. 더불어 그런 순간조차 우리에게 디딤돌이 될 수 있음을 조언하는 저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글을 사랑해서 얼마나 아픈지, 그러면서도 글에서 힘과 위안을 얻고, 그런 순간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 진실하게 와닿는 책이었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소소한 인생의 순간들을 사랑하고, 힘껏 애쓰며 살고 있는 이들에게 온화하지만 단단한 힘을 전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