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두 개 소설의 첫 만남 33
이희영 지음, 양양 그림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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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또 다른 배움의 시간인 건 맞다. 다만 그 배움이 방학을 맞이한 당사자가 아닌, 모친의 것이라는 사실이 조금 다를 뿐이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죠."

아니면 정식으로 아르바이트생을 뽑든가요, 하는 표정으로 나는 손톱을 매만졌다. 협상에서 우위를 선점하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도 전혀 아쉬울 게 없다는 여유를 보이면 된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이론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때로는 협상 자체가 의미 없는 완벽한 갑과 을 관계가 있다.

"딸이 시험 끝나고 모처럼 반 애들을 위해......"

"공은 공이고, 사는 사죠."

pp.11~12

어느 곳이나 삐딱하게 세상을 보는 부류는 있다. 다만 그 소수 때문에 말도 안 되는 해명을 하는 현실이 어이없고 화가 났다. 쿠키는 그저 쿠키일 뿐이었다. 버리기 아까워서 가져왔다니. 어떻게 그토록 무례한 말을 내뱉고는 장난이라며 쉽게 웃을 수 있을까.

p.23

반 아이들에게 쿠키를 나눠 준 것도, 꼬마에게 쿠키를 선물한 것도 모두 그냥이었다. 그러고 싶었고 그게 전부였다. 어떤 목적이나 이유 따위 없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단순한 마음을 믿지 않는 걸까? 의심하고 질타를 보낼까? 무거운 철문을 힘껏 닫아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안의 문은 너무 쉽게 열려 버렸다. 그 안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던 서러움과 속상함, 외로움과 아픔이 허물어지며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pp.47~48

"또 어디 가는데?"

"그냥."

정말 그냥이었다. 이제 쿠키는 살 필요도 먹을 이유도 없으니까. 그럼 전에는 어떤 필요와 이유가 있었나? 그 생각을 하자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가라앉았다.

p.80

이희영, <쿠키 두 개> 中

+) 이 소설은 엄마의 쿠키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고등학생 '나'의 시선과, 그 가게 앞에 서 있는 신비한 '소년'의 시선으로 구성되었다.

전체적으로는 '나'의 관점으로 서사가 진행되는데, '나'는 쿠키를 팔다가 꿈에서 본 소년이 엄마의 가게 맞은편에 서 있는 걸 알게 된다.

그 꿈에는 소년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투명한 손이 나와 '나'에게 말을 건다. 그렇게 반복되는 꿈에 호기심이 생길 때쯤 그 소년이 실제 눈앞에 등장한다.

이 소설에는 사람의 진심을 왜곡하는 불쾌한 이들의 목소리가 종종 등장한다. 저자는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그냥'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따뜻한 진심이다.

그런데 그 진심 어린 마음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주인공은 상처 입고 힘들어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순수하게 타인의 기쁨을 내 기쁨처럼 여기는 마음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함께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쿠키 한 개로 마음의 상처가 아물 수도 있다는 희망을 느끼면서 또 같이 행복했다. 진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 상처받기 보다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게 낫다는 걸 가르쳐 준 소설이었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장면들이 많았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꿈같은 이야기가 꿈이 아니게 되는 순간도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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