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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이정훈 지음 / 책과강연 / 2025년 9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소진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한다는 것. 그것은 어린 나에게도 견딜 수 없는 일이면서도 견뎌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 무력함을 깨달은 순간, 나는 내 슬픔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슬픔에도 순서가 있다는 것을, 내 슬픔은 뒤로 밀려나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감정의 위계를 배웠다.
"감정의 위계를 배운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감정의 위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배려하되,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것이지요. 그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성숙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pp.35~39
"코치님. 애들 정말 대단하네요. 어쩌면 이래요?"라고 하니, 코치의 말이 명언이다. "몸만 작지, 링에 올라가면 애어른이 어딨어요. 복서만 있지. 애들도 그걸 알아요. 여기 들어가면 스스로 해결하고 나와야 한다는 걸요. 애들 무르게 보지 마세요. 그 속에 단단한 게 들어 있다고요."
p.58
그때 노인이 낚싯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잡은 게 없네요."
"낚시하러 온 게 아니야." 노인이 천천히 도구들을 챙기며 말했다. "이 나이 먹어 봐. '오늘 뭐 하지?'하는 질문이 제일 괴로워. 갈 때가 마땅찮아서 온 거지. 여기까지 와서 욕심부릴 일이 뭐 있나. 그냥 왔다 가는 거야."
잠깐 강물을 바라보던 그가 덧붙였다. "그래야 내일도 올 이유가 있는 거고."
p.134
젊은이들은 급해지면 자기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부터 뺀다. 꿈, 희망, 관계, 돌봄, 온기. 그런 것들을 다 빼고 나면 그제야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가격이 된다. 그런 상품들이 진열대에는 즐비하다.
사는 것이 거칠수록 잘 먹어야 한다.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고 존중하는 최소한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홀대하는 삶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pp.211~212
"'사람이 나쁜 게 아니구나. 상황이 나빴을 수 있겠구나.' 하는 관점은 사람에 대한 연민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대신 그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게 합니다."
p.219
이정훈,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中
+) 이 책은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이 와닿는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매 순간 본인이 느끼는 감정에 진솔하고 그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보인다.
자기감정을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에 비해 저자는 사소한 상황에서도 항상 많은 것을 느끼고 기억하려는 사람 같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순간의 솔직한 기록이다.
아이 아빠로서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아이들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 친구의 아픔을 알면서도 그 입장을 배려해 말을 아끼는 사람, 힘들었을 군대 시절을 제주도의 푸른 바다로 마음에 담은 사람.
이 책에는 수많은 저자의 발자취가 담겨있다. 그의 문장과 함께할수록 그 감정선을 공유하며, 우리가 살면서 겪었을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아프고 서툴지만 위로가 되는 순간, 오십의 인생 선배로 이전 세대에 전해주고 싶은 삶의 이치, 인간관계와 인생길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시선 등이 담겨 있다.
어떤 글에서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다가, 어떤 글에서는 한없이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랑하면 할수록, 살아야 하면 할수록 감추어야 할 말이 자꾸만 생기고 마는 그런 날이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그것이 곧 서툴지만 따뜻한 위로로 남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풍부한 감성을 담은 문장과 사진들로 꽉 채운 책이다. 저자처럼 비 오는 날 혼자 술 한두 잔 기울이거나 오래전 좋아했던 음악을 들으며 읽으면 반가울 책이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