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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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늘 고객을 웃는 얼굴로 맞이합니다. 우리는 늘 고객이 원하는 바를 성심성의껏 들어줍니다....."

서비스업에 자아는 필요 없다. 봉사 정신은 일종의 군대식 규율에서 생겨난다. 이런 합창을 매일 계속함으로써 인간은 자기최면에 빠진다. 큐레이터를 목표로 들어온 백화점에서 나오미는 빈틈없는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어 기계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2%

"내 생각인데 남자는 마음 어딘가에 마누라를 심부름꾼처럼 여기는 구석이 있어요. 자신의 기저귀를 갈게 하다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탁할 일은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34%

실제로 나오미가 제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의 폭력보다 엄마의 작은 동물 같은 눈이었다. 저항도 못하고 울지도, 소리 내지도 못한 채 계속 맞았다. 지배당하는 인간의 표정을 나오미는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다.

47%

계획에 몇 가지 우연이 겹친 까닭에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가나코를 몹시 떨게 만들었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인 만큼 마음을 고쳐먹고 행운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제일 먼저 나오미에게도 알렸다. 그녀도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긴 대화를 나누고 난 끝에는 "다 잘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듯 말했다.

"아무튼 인생에 딱 한 번뿐인 일이었잖아. 반성해봤자 다음은 없어."

66%

지난 일주일 정도, 가나코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맛봤다. 그것은 도피도 아니었고, 자포자기도 아니었으며, 몸속의 본능이 있는 힘껏 세상을 차단하여 육체의 주인인 가나코를 분리시킨. 혹은 뭔가의 스위치를 파괴하여 감각을 마비시킨 느낌이었다.

97%

오쿠다 히데오, <나오미와 가나코> 中

+) 백화점 외판부에서 근무하는 '나오미'에게는 '가나코'라는 친구가 있다. 어느 날 나오미는 가나코를 만나러 갔다가 가나코의 멍든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가나코는 남편의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것이다.

이 소설은 가나코가 남편의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벗어나지 못하자 친구인 나오미가 가나코의 남편을 제거하기로 결심하면서 사건이 전개되는 스릴러 장르이다.

나오미가 그렇게까지 하게 된 배경에는 그녀의 아버지 때문이다. 나오미의 아버지도 나오미의 어머니를 때리는 사람이었다.

성인이 된 나오미 자매가 집을 떠나면서 아버지의 폭력성을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나오미는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하지 않는 것을 답답해한다.

그런 내면의 상처가 있는 나오미는 가나코가 폭행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남편을 어떻게 하면 제거할 수 있는지 많은 방법을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오래전 보았던 영화가 하나 둘 생각난다. 델마와 루이스. 나오미와 함께 남편 제거 계획을 실행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면을 보이는 가나코의 모습을 보면 영화 속 캐릭터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결말은 영화와 느낌이 좀 다르다. 이 소설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궁지에 몰린 그들이 내린 선택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그런 결말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이 치밀하게 가나코의 남편을 제거하는 계획을 세웠다면 그게 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틈이 보이는 계획이 더 현실적이었다. 그들을 이해하는 연민과 공감이 더 크게 일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유쾌한 소설만 읽다가 그의 추리 소설을 접하면서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는데, 결말을 보며 역시 이 작가답다는 생각을 했다.

가정 폭력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뤘다고 느끼며 개인적으로 두 사람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한참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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