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출근할 때는 잊지 말고 마음을 꺼내어 이불 속에 꼭꼭 숨겨두고 나오세요. 애초부터 마음이라는 게 없었던 사람처럼. 그래야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수 있어요.
마음을 꺼내두고 오는 일은 잠시 맡겨두는 일이다. 맡겨둔다는 의미가 반드시 되찾으러 간다는 약속과 같다면, 그것은 마음을 지우는 일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pp.15~16
"고맙다는 말. 아무래도 이 말이었던 것 같아."
"다른 말도 아니고 그 당연한 말에 힘이 생긴다는 거야?"
"말로 상처를 받기 쉬운 환경에서는 당연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감동도 쉽게 받거든."
당연함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태도로 사람을 대했을 때, 다행히도 아직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위안을 느낄 수 있었다.
pp.39~40
살아가면서 성장통이 찾아오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인지 스무 살 서류상으로 어른이 되던 때 첫 번째 성장통이 찾아왔었다면, 이제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드디어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방심할 때 비슷하지만 다른 얼굴을 한 두 번째 성장통이 찾아온다. 예전에는 나를 채우기 위한 통증이었다면, 지금은 나를 비우기 위한 통증이라는 점이 커다란 타이랄까.
사람들과 조직 생활을 한다는 건 혼자 글을 쓰는 일과는 엄연히 달랐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 조금만 맞춰주세요'라는 태도 대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맞춰볼게요'라는 태도를 익힐 수밖에 없었다.
pp.73~74
수상한 점도 있었다.
그들은 틈만 나면 물을 요청했다.
"저기요. 물 주세요. 나도요. 여기도요."
오늘따라 기내식이 자극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일부러 나를 조롱하고 있는 걸까.
그때 주변에 있던 한국 승객이 내게 말했다.
"물이 귀한 나라라 그래요.
마실 수 있을 때 많이 마셔두려고."
마음을 얻어맞아 부은 탓인지 입고 있던 유니폼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p.99
사실 지금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잃어버린 줄도 모른다. 심지어는 그것이 내 곁에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필요할 때가 되어야만 이제 그 물건이 더는 내 곁에 없다는 걸 알아챈다.
잃어버린 걸 되찾을 생각이라면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p.103
흔히들 마음을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그것에 너무 무뎌진 탓에 자신이 받는 입장이 되었을 때도 반응이 둔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많다. 마음을 주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은 작은 마음에도 쉽게 감동할 때가 많다.
마음과 감정이 소모가 아닌 순환일 때, 비로소 사람도 조금 더 풍요로워진다고 믿는다.
p.116
오수영, <아무 날의 비행일지> 中
+) 저자는 작가를 꿈꾸는 항공사 승무원이다. 지금은 꿈꾸는 일이 현실이 된 듯 하나, 이 책 속 글을 썼을 때는 승무원으로 살며 틈틈이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조율하고 있는 저자의 마음이 이 책 곳곳에서 묻어난다. 글을 쓰고 싶은 열정에 몸부림치며 오랜 시간을 지내온 저자가 승무원의 삶을 선택하기까지 꽤 힘들었으리라 짐작된다.
이 책은 승무원으로서 기내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마음을 지켜내고 꿈을 지켜내고 사람을 지켜내는 저자의 단상이 담긴 에세이집이다.
인생에도 터뷸런스가 찾아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 어떤 마음으로 버티는 것이 좋은지, 사람들을 상대하며 생기는 상처를 어떻게 다독이는지, 감정의 쓰레기통을 비우며 빈 마음을 채우는 따뜻한 말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 꿈, 사람으로 저자의 생각이 모이는 게 보인다. 직장인으로서 자기 삶을 성실하게 버텨가는 저자, 틈틈이 주어지는 시간에 혼자 글을 쓰는 저자,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사람에게 위안을 얻는 저자의 모습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사람이 무서워지는 직장인의 모습과 꿈을 잃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마음과 진심 어린 마음을 지키고 싶은 요즘 우리들을 단아한 문장으로 잘 담아낸 책이었다.
저자는 차분한 사람인만큼 인내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은 승무원을 그만두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꿈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쩐지 그 꿈에도 계획을 세워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 나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의 미래보다 그가 걸어가는 현재를 응원하고 싶다.
현실과 꿈 사이, 생업과 꿈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경계에서 조율하며 사는 사람의 모습이 담긴 이 책을 권한다.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경계선의 삶을 걷는지 미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