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날의 비행일지 - 기내는 사람으로 울창한 숲이다
오수영 지음 / 고어라운드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출근할 때는 잊지 말고 마음을 꺼내어 이불 속에 꼭꼭 숨겨두고 나오세요. 애초부터 마음이라는 게 없었던 사람처럼. 그래야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수 있어요.

​

마음을 꺼내두고 오는 일은 잠시 맡겨두는 일이다. 맡겨둔다는 의미가 반드시 되찾으러 간다는 약속과 같다면, 그것은 마음을 지우는 일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pp.15~16

​

​

"고맙다는 말. 아무래도 이 말이었던 것 같아."

"다른 말도 아니고 그 당연한 말에 힘이 생긴다는 거야?"

"말로 상처를 받기 쉬운 환경에서는 당연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감동도 쉽게 받거든."

​

당연함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태도로 사람을 대했을 때, 다행히도 아직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위안을 느낄 수 있었다.

pp.39~40

​

​

살아가면서 성장통이 찾아오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인지 스무 살 서류상으로 어른이 되던 때 첫 번째 성장통이 찾아왔었다면, 이제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드디어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방심할 때 비슷하지만 다른 얼굴을 한 두 번째 성장통이 찾아온다. 예전에는 나를 채우기 위한 통증이었다면, 지금은 나를 비우기 위한 통증이라는 점이 커다란 타이랄까.

​

사람들과 조직 생활을 한다는 건 혼자 글을 쓰는 일과는 엄연히 달랐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 조금만 맞춰주세요'라는 태도 대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맞춰볼게요'라는 태도를 익힐 수밖에 없었다.

pp.73~74

​

수상한 점도 있었다.

그들은 틈만 나면 물을 요청했다.

​

"저기요. 물 주세요. 나도요. 여기도요."

​

오늘따라 기내식이 자극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일부러 나를 조롱하고 있는 걸까.

그때 주변에 있던 한국 승객이 내게 말했다.

​

"물이 귀한 나라라 그래요.

마실 수 있을 때 많이 마셔두려고."

​

마음을 얻어맞아 부은 탓인지 입고 있던 유니폼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p.99

​

​

사실 지금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잃어버린 줄도 모른다. 심지어는 그것이 내 곁에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필요할 때가 되어야만 이제 그 물건이 더는 내 곁에 없다는 걸 알아챈다.

​

잃어버린 걸 되찾을 생각이라면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p.103

​

​

흔히들 마음을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그것에 너무 무뎌진 탓에 자신이 받는 입장이 되었을 때도 반응이 둔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많다. 마음을 주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은 작은 마음에도 쉽게 감동할 때가 많다.

​

마음과 감정이 소모가 아닌 순환일 때, 비로소 사람도 조금 더 풍요로워진다고 믿는다.

p.116

​

​

오수영, <아무 날의 비행일지> 中

​

​

+) 저자는 작가를 꿈꾸는 항공사 승무원이다. 지금은 꿈꾸는 일이 현실이 된 듯 하나, 이 책 속 글을 썼을 때는 승무원으로 살며 틈틈이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

꿈과 현실 사이에서 조율하고 있는 저자의 마음이 이 책 곳곳에서 묻어난다. 글을 쓰고 싶은 열정에 몸부림치며 오랜 시간을 지내온 저자가 승무원의 삶을 선택하기까지 꽤 힘들었으리라 짐작된다.

​

이 책은 승무원으로서 기내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마음을 지켜내고 꿈을 지켜내고 사람을 지켜내는 저자의 단상이 담긴 에세이집이다.

​

인생에도 터뷸런스가 찾아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 어떤 마음으로 버티는 것이 좋은지, 사람들을 상대하며 생기는 상처를 어떻게 다독이는지, 감정의 쓰레기통을 비우며 빈 마음을 채우는 따뜻한 말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 꿈, 사람으로 저자의 생각이 모이는 게 보인다. 직장인으로서 자기 삶을 성실하게 버텨가는 저자, 틈틈이 주어지는 시간에 혼자 글을 쓰는 저자,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사람에게 위안을 얻는 저자의 모습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

사람이 무서워지는 직장인의 모습과 꿈을 잃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마음과 진심 어린 마음을 지키고 싶은 요즘 우리들을 단아한 문장으로 잘 담아낸 책이었다.

​

저자는 차분한 사람인만큼 인내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은 승무원을 그만두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꿈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

그리고 어쩐지 그 꿈에도 계획을 세워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 나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의 미래보다 그가 걸어가는 현재를 응원하고 싶다.

​

현실과 꿈 사이, 생업과 꿈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경계에서 조율하며 사는 사람의 모습이 담긴 이 책을 권한다.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경계선의 삶을 걷는지 미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