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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정은 오늘도
김양미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4년 10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사장님, 제가 알아서 할게요. 주방일 처음도 아니고."
"뭘 알아야 제대로 할 거 아녀!"
"그럼, 사장님이 하는 거 보여주시면 고대로 따라 할게요."
"내가 다 할 거면 뭐 하러 돈 주고 사람을 써?"
p.31 [오순정은 오늘도]
어렸을 때부터 아빠 껌딱지였던 하나가 요즘 들어서는 눈 한번 제대로 맞춰주려 하지 않았다. 주말이면 같이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를 보내, 뭐 하냐고 살갑게 묻던 아이였는데 말이다. 오랜 시간 사귀어왔던 여자에게서 이유도 모른 채 실연을 당한 기분이었다.
p.55 [김종만은 오늘도]
"어딜 가든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 돈 떨어지면 거기서 벌어 쓰면 되고. 꿈이 왜 꿈으로 끝나는지 아냐? 사람들은 안 될 이유만 찾거든. 너처럼 생각이 많으면 계산기 두드리다 인생 끝나는 거야. 나처럼 단순하게 살아야 죽을 때 후회 안 한다."
p.95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아. 내 인생이 달린 문젠데."
"복잡할 건 또 뭐야. 어차피 뭘 선택하든 후회하게 돼 있어. 돈까스를 먹고 싶을 땐 그거만 생각해. 먹기 싫은 김밥 꾸역꾸역 먹지 말고."
"아무리 봐도 넌 사기꾼이 딱인데."
"뭔 소리야?"
"이상하게 설득이 된단 말야."
p.97
"하나야."
"왜?"
"언젠가, 라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아."
마음 먹었을 때, 하고 싶을 때 언제든, 그게 맞는 거라고 했다.
p.114 [김하나는 오늘도]
살아생전,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 돈 없는 놈보다 의리 없는 놈이 진짜 거지새끼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 괴롭히는 건 쌍놈이나 하는 짓이다. 담배꽁초 길에다 버리고 침 찍찍 뱉어대는 그런 것들은 고추를 떼버려야 된다. 술 마시고 아무데나 오줌 싸갈기는 놈은 똥개나 매한가지다. 자기집 방바닥에다 안 하는 짓은 집 밖에서도 하면 못 쓴다.
p.123 [자전거의 기울기 23.5°]
김양미, <오순정은 오늘도> 中
+) 이 책은 가족들 각각의 시선을 담은 단편 연작소설 네 편과, 그 외 세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달리 아이들에게만큼은 좋은 아빠인 김종만과 결혼한 오순정, 그녀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오리집, 곱창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된 삶을 이어간다.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도 못 해보고 아이가 생겨 오순정과 결혼한 김종만. 문학을 사랑해서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고 아내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는 생활형 가장이 그이다.
다른 여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통화하는 아빠를 보고서도, 자기 삶의 무게가 더 무거운 딸 김하나. 친구들의 괴롭힘을 보다 못한 명진이의 도움으로 무거운 짐 하나는 덜었지만 엄마 아빠의 다툼, 동생의 방황으로 복잡하다.
동네 할아버지께 자전거를 가르쳐드리며 본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리는 지훈. 오토바이를 타다 다쳤을 때에도 자신을 아껴준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제대로 사는 법을 자전거 타기에 적용해 본다.
오순정, 김종만, 김하나, 김지훈. 이 네 식구의 모습을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단편들이 코믹하면서 아프다. 요즘 말로 웃프다고 해야 할까.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임에도 똑같은 상황에서 각자 생각하는 게 너무 다르다. 이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며 우리네 가족 관계를 돌아볼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길고양이 로또, ADHD가 심한 아들을 돌보는 부모의 마음, 아이들이 성인이 되자 고된 삶을 마무리하려고 존엄사를 선택한 엄마.
이들의 모습 또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의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고된 삶을 접을 기회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도 낯설지 않다. 존엄사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지 않을까.
이 책에는 서민의 생활, 그들의 선택, 그들이 느끼는 감정 등이 웃픈 이야기 속에 잘 녹아있다. 힘든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지만 또 가끔은 미소 짓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입장을 이해하면 그들의 마음과 선택에 공감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심정이 이해되고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다.
각기 다른 단편소설들이나 이 책으로 엮으며 서로 조금씩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부부 사이든, 부모와 자식 관계든, 청소년 성장기의 고민이든, 버려지는 동물 문제든, 존엄사에 대한 희망이든 고된 삶을 사는 이들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웃픈 장면이 많았지만 그만큼 마음에 와닿는 순간도 많아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느낄 만큼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의 작품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