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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있다 1
제인도 지음 / 반타 / 2025년 8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동티 나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나."
수아 언니가 중얼거린다. 팔짱을 끼고 있는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다. 언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 동티? 그게 뭘까?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그게 아니면? 이따위가 뭐 중요한 거라도 돼?"
"아직 상속 전이니까 조심하자는 거지. 형이 여기 있는 식기 하나, 이불 하나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 우리 것이 되기 전까지는 주의해야 한다고."
p.128 [1권]
수아 언니도 웃으며 뒤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신발장 위에 놓인 수납 트레이를 힐끗 봤다.
"여기 뒀구나. 잘 어울리네. 현선아, 내가 한 말 기억나지?"
"귀신 붙은 것 아니냐고 소희가 난리 피운 거? 에그, 겁쟁이"
현선 언니가 깔깔거리며 놀렸다.
p. 326 [1권]
"항시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해."
"그러면... 이제 이상한 게 보이지 않을까요?"
"이건 잡귀를 물리치는 거지, 영안을 닫는 비책이 아니야. 계속 눈에 보이기는 할 거야."
"귀신이 항상 보인다고요?"
"아까 말했지. 숙명이라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고."
p.35 [2권]
<얘야, 나를 섬기지 않겠느냐?>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목소리가 말을 건넨다.
<혼자서는 힘들 텐데, 내게 오지 그러니.>
갑자기 힘이 난다. 그 말이 지친 몸과 마음에 힘을 불어넣는다.
<아... 돼...>
<소...야... 거기... 돼.>
"엄마? 엄마야?"
"엄마, 도와줘! 나 들어가기 싫어! 제발!"
pp.156~159 [2rnjs]
제인도, <누가, 있다> [1권], [2권] 中
+) 이 책은 호러, 공포 소설 그리고 오컬트 소설이라 부르기에 적합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엄마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주인공 소희에게 갑자기 사촌 형제와 자매들이 등장한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고모가 소희를 포함한 사촌들에게 유산을 상속했다는 것이다. 고모가 살던 시골집에서 사촌들과 함께 며칠을 보내면 공동 재산인 유산을 나눠가질 수 있다는 게 조건이다.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엄마를 잃고 상심한 소희에게 새로운 가족으로 등장한 사촌들과의 동거, 유산 상속이라는 뜻밖의 행운, 그 행운의 이면에 숨겨진 엄청난 저주, 반갑지 않은 존재들, 보고 싶지 않은 존재와의 만남, 그리고 소희를 지키려는 엄마의 영혼과 무당들.
이 소설은 조상, 악귀, 무당, 내림굿, 부적, 명두, 영물, 산신 등의 무속 신앙을 중심 소재로 한국식 오컬트를 만들었다.
작품에서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초자연적이고 신기한 현상들이 신비로운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괴기한 현상으로 일어난다.
소설 표지를 보면서 진짜 무섭게 그렸다고 느꼈는데, 이 작품을 읽는 내내 표지를 뒷면으로 엎어두었다. 책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는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고 덕분에 한여름 더위를 가시게 해준 소설이었다.
외롭게 살던 소희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사촌들의 모습을 보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가족이라는 말로 갑자기 다정하고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는데.
마음이 여린 소희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함께 안타까워했다. 혼자만 살겠다고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소희에게 저주를 떠넘기는 것을 보며 같이 속상하고 분노했다.
소설은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흥미진진했다. 무엇이 진실일까 궁금했고 어떻게 끝이 날까 궁금했고 악귀를 모시는 무당과 신을 모시는 무당이 이렇게나 다르구나 생각했다.
어떤 선택이든 본인의 몫이지만 기본적으로 그 선택은 항시 책임이 따른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선한 마음이 있어야 선한 존재들이 돕는다는 것도 배웠다.
소름 끼치는 순간을 느낄 때마다, 긴 분량의 장편 소설임에도 술술 읽힐 때마다, 이 작품을 영화 한 편으로 제작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오컬트 호러 소설에 관심이 생길 만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