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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븐을 켤게요 - 빵과 베이킹, 그리고 을지로 이야기
문현준 지음 / 이소노미아 / 2025년 8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티라미수는 이탈리아어로 '나를 끌어올리다'라는 의미가 있다. 한마디로 기운 나게 해준다는 뜻이다. 비록 만드는 과정은 번거롭지만 잘 만든 티라미수는 말 그대로 사람의 에너지와 기분을 끌어올리는 달콤한 맛이다.
p.43
도대체 어떻게 해야 시간이 지나도 바삭한 모카번을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그때 내가 가진 가장 큰 고민이었다.
결국 무엇을 하더라도 이전보다 명확하게 나아진 결과를 얻지는 못해서, 인터넷 영상에서 나오는 바삭하게 부서지는 쿠키와 그 아래 보드라운 빵결의 모카번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계속 궁금할 뿐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모카번 베이킹은 그 후 다소 싱겁게 끝을 맞이했다. 동네의 유명한 빵집에서 일부러 모카번을 사서 먹어본 날이었을 거다.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유명한 빵집이니 참고삼아 보려고 했는데, 그 모카번 역시 시간이 지나자 눅눅해졌던 것이다.
'아, 모카번은 원래 눅눅해지는 거구나.' 나는 그제서야 그만둘 수 있었다.
pp.79~80
오히려 요리나 베이킹 등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과 일정을 진행할 때 나는 좀 더 재미있다고 느끼는 편인데, 누군가가 해 본 적 없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게 꽤 큰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쿠키나 빵을 만든 후 직접 만든 것을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는 것을 볼 때, 그 성취감이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p.96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하면 그땐 공식적으로 미안한 일이 되어버리는데, 시실 대대적으로 사과할 만큼 잘못한 일은 아니지 않냐고 내게 반문하기도 했다.
"잘 안된 일정은 그냥 다음부터 잘하겠다고 하고, 다음부턴 그러지 않도록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담담한 그녀의 설명.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때부터 진짜 미안한 일이 되니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까지. 그때 그 이야기가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말인 것 같아 아직도 마음에 새겨두고 있다.
p.106
아직도 종종 생각한다. 그때 돈과 시간이 들더라도 아예 바닥 미장을 처음부터 다시 했어야 했다고. 평평하고 견고하게 맞춘 후 수평 작업과 코팅을 진행했다면 좀 더 낫지 않았겠느냐고.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종종 바닥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공사했던 사람은 나중에 이런 문제가 터질 줄 미리 알고 있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요청한 시간 안에 공사를 마무리하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pp.156~157
삶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고 그것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불행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나는 기대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것이 회사에서건, 삶에서건 간에.
p.214
문현준, <이제 오븐을 켤게요> 中
+) 이 책의 저자는 빵을 굽고 쿠키를 만드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베이킹에 진심인 그는 빵을 만들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여러 번 반복해 만들어보거나 베이킹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며 해결책을 찾곤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베이킹 체험 활동을 계획했고, 처음에는 공유 공간을 이용해 베이킹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계속 달라지는 공유 주방에서 베이킹 활동을 하다 보니 저자 자신도 낯설어서 이런저런 당황스러운 일들이 발생했다. 그러자 저자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침 퇴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저자는 용기를 내 을지로에 베이킹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덕분에 을지로 곳곳의 인상적인 먹거리 공간들을 소개하는 부분도 책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베이킹 활동을 진행할 때 생기는 일들, 베이킹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과정, 그리고 다양한 빵과 쿠키를 만드는 경험 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에는 저자가 독일 유학을 갔을 때의 경험담과 회사 생활을 하며 느낀 점들을 담아냈다.
빵을 만드는 취미가 있으면 어떨까 막연하게 생각해왔는데, 저자도 이런 생각을 하다가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베이킹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빵을 만드는 공방을 만들고 그곳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타인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베이킹에 대한 구체적인 레시피를 담지 않았지만 베이킹이나 요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 시도해 봐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었다.
글을 읽는 내내 책에서 기분 좋은 빵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베이킹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나, 베이킹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데 걱정되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반갑고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