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품절


ㅡ그래? 넌 이야기가 왜 좋은데?

지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ㅡ끝이...... 있어서?

소리가 신기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ㅡ난 반댄데.

ㅡ뭐가?

ㅡ난 시작이 있어 좋거든. 이야기는 늘 시작되잖아.

지우가 잠시 먼 데를 봤다.

ㅡ이야기에 끝이 없으면 너무 암담하지 않아? 그게 끔찍한 이야기면 더.

소리도 시선을 잠시 허공에 뒀다.

ㅡ그렇다고 이야기가 시작조차 안 되면 허무하지 않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잖아.

27%

ㅡ있지, 사람들 가슴속에는 어느 정도 남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그런데 모를 리 없는 저열함 같은 게.

ㅡ그러니 너도 조심해.

ㅡ......

ㅡ믿을 건 가족뿐이야.

저 사람의 피가 자기 안에 흐르고 있다는 그 명백함, 그 징그러움을 어쩌지 못해서였다. '그러니 이상한 사람을 피해 도망친 곳에 더 이상한 사람이 있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채운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58%

어제 강당에서 상담 교육을 받는데, 여기 봉사활동을 온 정신의학과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더라.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어.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거든.

74%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하지만 실제의 우리는 그냥 돌아갈 뿐이라고, 그러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 삶의 나침반 속 바늘이 미지의 자성을 향해 약하게 떨릴 때가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그런 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 데다 거의 표도 안 나는 그 정도의 변화도? 혹은 변화 없음도? 지우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96%

김애란, <이중 하나는 거짓말> 中

+) 이 소설은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는 세 명의 고등학생들이 서로의 인생에 조금씩 관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담임 선생님이 만든 자기소개 게임, 즉 다섯 개의 문장 중 하나는 거짓말로 자기소개를 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진다.

작품에서 '이중 하나는 거짓말'인 다섯 문장이 누군가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쩌면 그건 스스로를 거리를 두고 살펴보는 방식의 게임인지도 모른다.

네 개의 진실과 한 개의 거짓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하고 세상은 그런 우리를 잠시라도 주의 깊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 다섯 문장으로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여기서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표면적 스토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꾸려가는 각자의 삶, 그중에서도 사연을 담은 한 부분의 이야기를 말한다.

엄마는 죽고 엄마와 동거하던 엄마의 애인과 살게 된 지우, 타인과 접촉하면 그의 미래를 잠시 볼 수 있는 소리, 가족의 틀에서 괴로움을 느끼며 비밀을 안고 사는 채운. 이 세 사람은 서로의 비밀을 눈치채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 소설은 마치 청소년의 성장 소설 느낌이 있다. 아이들의 심리적 방황과 내면의 변화를 통해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선택을 할지 다짐하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 청소년만의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어른들도 어떤 순간이든 매번 선택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후회와 두려움,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에 아이들에게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중 하나는 거짓말'의 의미가 진실을 강조하기 위한 배경도 아니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치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문장은 화자와 청자, 독자를 모두 하나로 엮고 있다.

진실과 거짓을 담은 이야기는 아이들의 말처럼 시작과 끝 둘 다 매력적이지만 그 자체로 빛을 낸다. 이야기를 사이에 두고 화자, 청자, 독자가 호기심을 갖는다. 어떤 사이든 그 관계의 의미를 은은하게 드러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숨 쉴 틈 없이 행간을 꽉 채워 써 내려가는 저자의 필법은 여전하구나 싶었던 작품이었다. 문장 구사력이 단단하고 참 알차다는 말을 이미 중견 작가가 된 저자에게 하면 실례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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