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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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눈물이 흐른 건가, 그래, 재준아, 넌 그렇게 소년인 채 사라졌구나.

내가 어른이 되고, 늙어 가도 너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아직 덜 자란 소년으로 남아 있겠지, 내가 소녀에서 여자가 되고,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도 너는 그렇게 풋풋한 소년으로만 남아 있겠지, 이 바보, 나쁜 놈, 왜 못 타는 오토바이는 탔냐구?

p.34

"같이 가기 싫댔잖아?"

내가 신경질을 팍 내자 그 애는 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나도 집에 가야 하잖아?"

참, 그랬지. 웃고 있는 그 애의 눈은 어찌나 밝고 착해 보이는지 그만 나는 단번에 무장해제 되는 느낌이었다.

"너 아까 멋있더라."

"흥!"

"그런데 넌 할 말을 다 하더라. 넌 참 용감해. 저기...... 너랑 친구 하면 안 될까? 그냥 친구 말야. 남자 친구 말고."

pp.42~44

내가 생각할 때 사랑에 있어서도 우정에 있어서도, 타이밍이란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타이밍, 즉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일 때 상대를 만나는가' 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우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p.54

"유미야, 나는 기본적으로 어른이 해서 나쁜 짓이 아니라면 아이가 해서도 나쁜 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해서 나쁜 짓이라면 그건 어른이 해도 나쁜 짓인 거야. 그러니까 귀를 뚫어선 안 된다, 이런 규율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아직 어릴 때는 자기가 한 일에 책임질 능력이 없으니 학교에서는 어떻게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p.75

3월 14일(금)

진짜 재미있다. 아, 산다는 게 이런 거였던가, 하는 깨달음이 드는 하루였다.

죽은 사람의 심정이 되어 하루를 보내 보았다. 그건 정말 신나는 놀이였다.

일단 아침에 자리에서 깼을 때, 나는 이미 죽었어, 하고 생각했더니 눈앞에 펼쳐진 하루가 한없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pp.95~96

5월 15일(목) 맑음

그 공책에 나는 프랭크 해리스란 사람이 채플린에게 썼던 편지 구절을 적어 넣었다.

'웃기는 사람은 울리는 사람보다 존경할 만 하오.'

p.145

이경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中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이 책은 유미의 단짝인 남자 사람 친구 재준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가 적힌 재준의 일기장을 받게 되면서 유미는 생각한다.

재준이는 사고로 죽었는데 혹시 사고로 죽은 게 아닐까. 그런 마음을 먹을 친구가 아닌데. 유미는 의아하고 미안한 마음이 뒤섞여 재준이의 일기장을 쉽게 열어보지 못한다.

재준과 유미가 처음 만난 곳은 학교였다. 다른 학교에서 전학을 와서 낯선 환경에 처한 유미에게 재준이 먼저 손을 내밀며 둘 사이는 가까워진다.

유미는 굳이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유미의 단단함 혹은 당당함 때문이다. 하지만 끝까지 따뜻하게 다가오는 재준의 손을 거절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그만큼 유미는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데 어색한 아이일 뿐이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 과정에서 유미의 상처는 생각보다 크다. 부부의 문제는 부부의 문제겠지만 그 사이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처한 채 무조건 적응해야 하기에 혼란스러움은 당연하다. 유미는 그러면서 단단해졌지만 그만큼 마음을 열고 나누는 것이 쉽지 않아진 듯하다.

재준은 아픈 엄마를 위해 나름 말썽 피우지 않고 살아가려는 평범한 친구이다. 이런 재준이에게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라는 구절은 무슨 의미였을까.

개인적으로 유미만큼이나 재준이가 생각이 깊고 마음이 따뜻하며 무엇보다 용기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그 손이 빨개지도록 계속 거절당하면서도 여러 번 마음을 여는 모습은 용기와 진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쉬운 일이 아니다.

남자 사람 친구, 여자 사람 친구로 두 사람이 나눈 공감과 교감의 틀은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 우정이라는 표현을 더 깊고 더 넓게 만들어주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친구 사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죽었다고 가정할 때, 일상의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하게 다가오는지도 보여준 작품이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존재와 그들과의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제시하는 소설이다.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현재의 삶과 곁에 있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감정이 허무나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소중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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