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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ㅣ 창비시선 258
이승희 지음 / 창비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그래, 나 못생긴 돌멩이 맞아, 맞다고, 납작보리 같은 흉터도 선명하지. 꽃병 둥글게 날아가던 시절, 그 불길 속을 날았지. 그래 난 아직도 날고 있는 중이야, 어쩔 건데. 아직 아무것도 맞히지 못했을 뿐이야, 온전히 내 무게를 공중에 버리고 나면 떨어지지도 못하고 사라지겠지만.
그렇게 중심을 잃는 일 두려워, 무서워 속도를 늦출 수 없네. 비껴가고 싶지는 않지만 부딪혀 깨져가거나 제 무게만으로 추락하는 일은 무서워, 그래도 비명 같던 무늬 둥글게 타오르고, 상처도 닳고 닳으면 둥글어지겠지만, 둥글게 날아가 박히는 것이 더 깊고 오랜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당신도 알아야 할 거야.
이승희,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中
+) 시인은 "누님"을 만나러 가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벽제 가는 길"에는 누님이 일했던 "방직공장"도 보이고, "화염병 냄새가 진동"하는 "돌멩이"들이 널려있다.[아직은 봄이 아닌걸-벽제 가는 길2] 안쓰러운 하루를 살던 누님의 과거가 묻어나는 길 위에 화자가 서 있다.
화자는 그곳에서 "돌멩이, 라고 나직이 불러"보면서, "손안 가득 쥐어"보기도 한다. 돌멩이를. 이내 "돌멩이 같은 마음은" "어디로 날아가 누구의 이마를 깨고, 간단히 중심을 무너뜨릴" 것만 같은 불안함을 느낀다. "한데, 명치 끝"에 단단히 돌멩이가 박혔다. 그 "둥글지 않은 온기, 모난 속에서도 살아남은"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버린 것이다. 화자는 "그런 따뜻한 온기가 있기에 더 식지 않고 더 격렬"하게 살아갈 수 있다.[돌멩이]
이 시집에는 '돌멩이, 돌, 바위' 등이 등장한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둥글고 굳건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날카로운 돌은 없다. 둥근 돌이 깎이고 닳아서 모난 돌이 되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뾰족하진 않다. 그것은 온갖 시련을 견뎌낸 사람의 태도와도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고초를 겪은 자들은 담담해지는 법을 배운다.
마찬가지로 돌도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었을"[웃는 돌] 것 같고, "잔주름 물결치는 생이 고스란이 남아"[둥근 것들의 다른 이름] 있을 것 같은, "웃는 돌"로 묘사된다. 생을 견뎌가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화자에게 있어서,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에도 꿋꿋하게 스스로를 지켜가는 돌의 형상이 마치 인간의 마음과도 같이 느껴진다. 비록 가끔씩 "못생긴 돌"처럼 못나게 굴기도 하고, "뾰족한 돌"처럼 나쁘게 굴기도 하지만, 비바람에 닳을수록 더욱 둥글어지는 끈기와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런 돌들이 깔린 "길도 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화자는 "문득 길 위에 서 있을 때" 하게 된다.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집, "어둠속에서 제 기다림을 꺼내 보이는" 집은 마치 "어머니"같은 존재이다.[집은 없다] 역설적이게도 집은 없고 어머니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당차다. 의연하게 생명의 씨앗을 키운다. 그리고 햇살과 바람과 하늘과 자연과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단단한 그리움"으로 씨앗을 심고 기른다.[호박] 바로 이 단단한 것들은 부드러운 힘을 지닌 돌멩이와 같다. 길 위에서, 길 끝에서, 어머니같은 집을 마주하고 서 있는 한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