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되어 줄게 문학동네 청소년 72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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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는 자꾸 거짓말하지 말고 허락을 받으면 안 돼?"

아, 답답한 소리.

"허락을 안 해 주니까 그렇지."

"속이니까 허락을 안 해 주지."

"못 하게 하니까 속이는 거야."

"설마, 너도 엄마한테 말 안 하는 거 있어?"

또 또! 얘기가 왜 또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거지? 말문이 막혔다.

pp.14~15

나는 밖에서 입었던 옷 그대로 침대에 들어간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누워 보니 윤슬이 마음을 알겠다. 그냥 푹, 퍼지고 싶은 날이 있는 법이다. 끊임없이 시계를 보고 할 것, 살 것, 연락할 것, 예약할 것, 챙길 것들을 나에게 톡으로 보내 놓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안절부절 피곤하게 살았다.

나는 윤슬이의 마음뿐 아니라 내 마음도 알아주지 않았던 것 같다.

p.79

윤슬이는 윤슬이의 시간, 윤슬이의 공간, 윤슬이의 인간관계를 만들며 자신만의 세상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는 중이다. 그걸 잘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기다리고 돕는 게 내 역할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떠나보내려고 시작하는 관계가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을 알면서 모든 것을 쏟아붓는 관계가 또 있을까.

p.123

엄마도 그랬다.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해도 기분이 안 좋은지, 어디가 아픈지, 친구와 싸웠는지, 엄마를 속이거나 잘못한 일이 있는지 다 알았다. 내가 목소리 톤이 높아서, 고개를 45도로 기울이고 있어서, 젓가락을 X자로 꼬아 쥐어서, 스토리에 거울 셀카를 올려서 알아챘다는데, 너무 엉뚱한 소리지만 사실 대부분 맞았다. 엄마들은 정말 대단하다. 그냥 할머니한테 솔직하게 다 말할까.

p.149

"왜? 뭐 잃어버렸어?"

"아뇨. 그냥. 별일 아니에요."

"자기 일은 다 별일이지. 다들 별별 일 겪으며 살아. 애기들이라고 다른가."

p.163

조남주, <네가 되어 줄게> 中

+) 사춘기 딸은 엄마와의 대화가 점점 불편해지고, 엄마는 딸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런 시기에 타임슬립을 통해 둘의 몸이 바뀌게 되다. 1993년 청소년 엄마의 몸속에 딸의 영혼이, 2023년 현재 딸의 몸속에 엄마의 영혼이 들어가게 된다.

이 소설은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은 뒤바뀐 몸을 통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이해하게 된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몰랐던 부분들까지 알게 된다는 점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자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엄마와 딸, 할머니와 엄마, 이모와 엄마의 관계 등에서도 각자 몰랐던 부분을 어느 순간 발견하는 그들을 볼 수 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독자는 관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배울 수 있다.

청소년기의 엄마지만 같은 또래의 친구 같기에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현재 청소년인 딸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된다.

다정하면서도 의미 있는 청소년 소설 한 편을 만난 기분이었다. 어찌 보면 살아가면서 접하는 모든 관계는 개인 위주로 생각하게 되고 진행된다. 아무리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려 해도, 그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철저하게 개인적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가족이기에 모든 것을 참고 이해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가족이기에 더 배려하며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자기 위주의 시선이 아니라 관계의 반대편에 서 있는 상대방의 입장을 아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는 걸 가르쳐준 책이었다.

딸이 알게 된, 엄마와 할머니 사이, 할머니와 이모 사이의 오래된 비밀을 그들에게 이야기하려 할 때 이모가 조언한다. 엄마 마음의 문제는 엄마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이 부분을 보면서 가족 사이에서도 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모른 척해주고, 때로는 알아서 하도록 기다려주는 것. 그 과정이 마음 아프고 힘들더라도 잘 모르면서 개입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가끔씩 피식, 하고 웃었는데 그건 어쩌면 엄마의 마음과 딸의 마음 둘 다를 이해하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재미있는 장면도 많았고 긴장감이 느껴지다 다시 통쾌함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괜찮을 듯하다.

청소년들은 이 책을 보며 어른들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알게 될 것 같고, 어른들은 청소년기의 마음을 떠올리며 청소년들을 바라보게 되는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단숨에 읽을 만큼 재미있고 흡입력이 좋은 작품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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