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꽃 치매꽃 - 치매 꽃나무에 꽃피운 딸의 기적
김윤숙 지음 / 문암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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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갈수록 남자들의 얼굴에서 엄마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엄마의 휠체어를 밀고 걷다 보면

자신의 어머니를 보듯 한참을 바라보며

회상에 젖는 남자들의 눈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엄마 사랑은 남자도 깊다는 것을 안다.

p.21

차라리 안 봤더라면 잘 계시겠지 했을 텐데 발걸음이 무겁다. 늘 이래도 저래도 가슴 아리다.

간혹은 일부러 끈도 끊어내야 한다. 홀연히 바람이 구름이 데려다주는 곳에 안착해 낯선 곳을 탐방하며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초기 치매 때는 그저 엄마가 났기만 바라는 마음으로 성심을 다했는데, 더 이상 호전이 없고 멈춰버린 내 시간은 긴 동거 기간동안 묶여 버린 다리와 마음이 아픈 나를 남겼다.

특별히 다른 문제가 없더라도 늙고 아프신 노모와 사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과 몸이 지치는 일이다.

새삼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p.77

혼자 뚜벅이로 다니는 일은 진통이 거의 없다. 소란스럽지 않다. 타인을 배려하려는 감정 또한 소모할 필요가 없다. 혼자 사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중독처럼 시커먼 배낭 안에 따뜻한 커피가 담긴 작은 보온병 한 개와 사랑하는 사람의 책 한 권 그리고 필통, 작은 메모장, 립스틱이 들어있는 파우치 하나만 넣고 홀가분하게 살 수 있다.

섬은 마음의 섬도 있다.

큰 곳, 먼 곳, 그런 곳만이 여행이 아니다.

오늘 엄마가 또 이틀 단기 보호 들어가신다. 이런 날은 혼자 고독할 수 있는 밤, 그 밤이 여행지이다. 또 다른 시간을 맞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내가 건강해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다.

pp.86~87

확언하지만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가장 신중하고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를 아는 일이며 그 다음이 선택이다. 지난날의 나의 잘못이라면 나 자신을 몰랐던 탓이 가장 크다.

p.97

삶은 늘 뜻하지 않은 문제도 주지만 답도 준다.

p.120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엄마."

"미워한다고 진짜 미워하겠어요? 내가 힘들어서 그래, 엄마."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이중성으로 나는 매일 슬퍼."

그 말에 울컥하신지 눈가에 눈물이 고이시더니 고개를 옆으로 떨구신다.

"미안하고 고맙지."

"괜히 화내면 내가 나쁜 딸이겠지만 앉아만 있으면 다리에 근력이 빠지니까요. 결국 엄마를 위해서 그러는 거잖아요."

반복되는 행동장애는 내 영혼을 자꾸만 무너트린다.

엄마가 진짜 미운 것이 아닌데 자꾸만 미워져 엄마.

pp.121~122

계절에 절기가 있듯, 소중한 관계에도 절기가 있다. 당신이 오늘 고통스럽다면 행복한 일이다. 원하는 곳에 닫기 위해 고통스럽다. 절기는 순환하지만 소중한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이 없으면 우리는 이별한 것이다. 모든 감정이 소중한 이유다.

p.249

김윤숙, <엄마꽃 치매꽃> 中

+) 이 책은 치매를 앓고 계시는 엄마와 함께 1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온 저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게 된다. 요리를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하며 자유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사랑과 자유는 어떤 면에서는 공존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 아픈 엄마를 보살피는 저자의 일상에서 그런 순간들을 보게 된다. 엄마도 사랑하고 스스로도 사랑해서 벅찬 순간. 엄마를 지키려면 스스로도 지켜야 해서 아픈 순간.

90이 넘은 노모는 요즘 80대 초반의 삶에 머물러 있다. 쉼없이 바라보는 딸의 애틋한 시선으로 노모는 10살쯤 어린 그때에 멈춰 있는 게 아닐까.

작가는 엄마가 치매에 걸리면서 본의 아니게 화가 나는 순간이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엄마 역시 본의가 아니었음을 알지만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 앞설 때가 있다. 그런 때를 숨김없이 적어내려간 저자의 문장에서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참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자꾸 기억을 잃어가는 노모와 같이 오랜 시간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니라, 본래 단단한 씨앗을 가진 사람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요리하는 걸 즐기는 저자는 이 책에서 마음껏 제철 식재료의 가치와 아름다움, 그리고 맛있는 요리만큼 멋있는 요리 과정을 맛깔스러운 문장으로 담아냈다.

그리고 스스로를 엄마를 모시면서 본인만의 시간도 마련하고자 애쓰는 사람임으로도 표현했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아니라면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본인을 사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인생에 섣부른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편찮으셔서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그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막연한 추측이나 상상조차 송구한 느낌이니까.

하지만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마음껏 상상하고 추측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정성스러운 요리만큼 어떤 순간도 정성스럽게 살 것 같은 사람. 타인에 대한 사랑과 자신에 대한 사랑을 조화롭게 지키려는 사람.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사람.

정성스러운 문장과 아름다운 꽃말, 그리고 진솔한 고백이 담긴 에세이집이었다. 엄마꽃 치매꽃을 꺾지 않고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아름답게 피워내는 순간을 담아낸 책이라고 느꼈다.

* 이 서평은 작가님께 도서를 선물받아 쓴 글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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