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땅속에서 헤엄을 시작한다 - 무명작가 김유명 산문집
김유명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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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대부분이 자신을 투영한 모습을 마주했을 때다.

내가 최고라고 백날 떠드는 게 자존감이 아니고

실수한 나의 모습도 미워하지 않는 것이 자존감이다.

p.20 [자존감이란]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거라든가,

깨끗하게 정돈된 책상이라든가,

잘 개어진 빨래에서 풍겨오는

섬유 유연제의 냄새라든가.

무기력이 인생을 덮쳐왔을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태산 같은 것들을 떠올리지만

때때로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사소한 것들이다.

p.25 [찬물에도 녹아진다]

행복한 기억은 손에 꼽는 데 비해 불행은 매해 기록을 경신하고, 내년에도 역시나 기록적인 불행이 찾아올 테니, 벌써 무너질 필요가 없다는 빅브라더의 선전문구다. 매해 그래왔듯이 올해가 가장 힘들다.

"올해 불행도 역대급! 기록적인!"

pp.87~88 [역대급, 기록적인!]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최소 한 사람 이상의 인생이 부딪혀 오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글을 읽어 내려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물여덟의 까뮈에게,

서른의 하루키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p.164 [차원을 달려서]

예술이라는 게 거창해 보이지만

책상 밑에 피어난 곰팡이 같은 것이다.

몰랐다면 언제까지고 모른 채

살아갈 수는 있지만,

곰팡이를 마주하고 나서는 해치우지 않으면

지나칠 수 없게 된다.

p.170 [예술은 곰팡이 같은 것]

누군가를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은

쉬이 남의 이야기를 꺼내 들지 않는다.

상처를 모른체하는 미덕과

파도에는 휩쓸리지 않는 침묵은

모두 깊은 공감에서 비롯된다.

p.229 [공감은 침묵으로]

김유명, <거북이는 땅속에서 헤엄을 시작한다> 中

+) 이 책은 산문집이라는 이름처럼 저자의 단상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즐겁게 웃다가 순간 진지해지는 청춘의 말과, 가족과 함께한 유년 시절 그리고 학교에서의 기억 등이 담겨 있다.

또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에 주목해 자기만의 비판적인 시선으로 표현한 내용과 비관과 낙관 사이의 감정들을 풀어낸 것들도 있다.

문학이라는 예술에 빠져 글을 읽고 쓸 때의 고통과 낭만에 대해 솔직히 적어간 문장, 짧은 분량의 소설 등도 싣고 있다.

이 책 한 권에서 저자는 본인이 쓰고 싶었던 글을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종류든 상관없이 자기 안의 것들을 문장으로 쏟아내고 싶었을 저자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 천천히 읽은 책이다.

염세와 낭만, 비관과 낙관, 그리고 고통과 즐거움 사이에서 문학을 사랑하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묵묵히 걸으며 겪어가는 일이라는 걸 묘사한 책이라고 느꼈다.

여기서 청춘을 꼭 나이로 제한하고 싶지는 않다. 혼란스러운 때를 지나는 모든 이들이 청춘이지 않나 싶다. 저자는 그 방황의 시기를 겪는 이들이 자기만의 감정과 문장으로 그때를 꿋꿋이 헤엄쳐 가면 된다는 걸 조언해 준 듯하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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