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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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도와 관계없이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들, 관습 혹은 단순한 호감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커뮤니티, 실체도 없이 우리 삶의 테두리를 제한하고 경계짓는 국적이나 호적 같은 것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는 줄 수 있겠지만 그 위로는 영원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p.10

담백하게 요약된 한 사람의 생애를 들으며 나는 인간이란 어째서 이렇게 하나같이 외로운 것일까, 생각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피 흘리는 다리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불가항력의 죽음 앞에 설 때까지, 철저하게 혼자일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의 운명적인 한계가 박이 들려주는 그 짧은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p.26

감정은 전염된다. 타인의 편집된 고통에 대한 재이의 불만족이 감지된 이후부터 나 역시 내가 쓴 대본이 모두 거짓 같다는 자격지심에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재이는 연민이란 자신의 현재를 위로받기 위해 타인의 불행을 대상화하는, 철저하게 자기만족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는 것 같았다.

pp.63~64

용서하지 않으면 되잖아.

뭐? 되물었을 때 그는 다시 말했다. 용서하지 말고 계속해서 미워하도록. 지극히 인간적으로, 이가 갈릴 만큼. 그 감정이 그 작자가 너한테 준 마지막 선물인거야.

윤주에게 내가 걸었던 희망은 윤주의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는 것, 그래서 나 역시 그 애의 그 미워하는 마음만큼 서운해하며 동시에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는 그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진실마저 외면하는 순간, 내 남은 생애는 이가 갈릴 만큼, 지극히 인간적으로 영원히, 언제까지고 영원히, 스스로를 미워하고 또 미워해야 하는 나날뿐일 테니까.

pp.116~118

"나는 늙었어요. 김작가. 늙었다는 말의 의미를 아오? 감정이 다 사치가 된다는 뜻이에요. 남은 시간이 뻔하니 저절로 그리되어가는 거요. 관용이라면 관용이고 체념이라면 체념이겠지."

p.208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p.222

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 中

+) 이 책은 탈북인으로 낯선 나라에서 철저하게 고립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로기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가 주인공이라기 보다 로기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서술자의 이야기가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서술자가 로기완이라는 한 인물의 생애를 추적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꽤 충격적인데 그것이 근원이 되어 이 소설이 시작된다고 본다.

선한 의도로 행한 일이 정말 악한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선한 일일까, 악한 일일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나 아픈 사연에 마음 한편이 저려왔다. 마음과 달리 한 사람의 생애에 큰 피해를 주었다면, 그것이 설사 본의가 아니더라도, 그때의 우리는 어떤 마음일까.

만약 그런 입장이라면 상상하기조차 힘든 자책감과 죄책감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으리라 느낀다. 딱 그때 서술자는 로기완의 사연을 접하게 되고, 무작정 그를 찾아 낯선 타국으로 떠난다.

소설에서도 계속 언급되듯이 한 사람의 생애에 개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골똘히 생각해본다. 처음에는 관심이었고, 애정이었으며, 최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곧 타인의 영역에 깊이 개입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로기완을 도운 의사 '박'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만약 박이 로기완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같은 의도였음에도 '윤주'를 돕던 '나'의 행동은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 둘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선한 행동을 동기로 결정해야 하는지 결과로 결정해야 하는지 딜레마에 빠진 기분이었다.

타지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로기완의 발자취를 쫓는 서술자는 조심스럽지만 여전히 타인의 삶에 개입하려 한다. 자신이 타인에게 진심으로 내민 손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누군가가 내민 손을 잡아 성공한 로기완의 삶에서 그녀가 얻으려 했던 것은 위안이지 않았을까.

아마 위로 혹은 위안이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죄책감과 두려움 혹은 원망 사이에서 길을 찾아가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소설은 캐릭터를 통해 그들의 선택이 지닌 의미를 명확히 제시한다. 그것을 어떤 의미로 수용할지는 독자의 몫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어떤 한계점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지 보여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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