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트
조던 카스트로 지음, 류한경 옮김 / 어반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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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삶을 살 수도 있었는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사진 속 모두가 내가 고등학생 시절 마주쳤을 법한 사람들처럼 생겨 있었다.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과거는 이렇게나 묘한 방식으로 현재와 맞닿아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알고 지내던 이들은 납작해지다 못해 한데로 섞여, 얼어 있는, 아무런 의미 없는 테마로 찍힌 사진 속의 낯선 이들이 되었다.

p.51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엉성한 주장을 펼치거나 서로 즉각적인 반응을 주고받으며 각자 최악의 모습만을 공유하는 텍스트 기반의 극장으로 변모해 갔다면, 인스타그램은 사람들이 그나마 덜 자극적으로 품위를 잃는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실제로 따져 봤을 때 인스타그램이 창출해 낸 것은 아름다움은커녕 소탈함도 아니었고, 그저 또 다른 거짓말일 뿐이었다. 간략하게 따져 보자면 인스타그램은 허영심이었고, 트위터는 오만함이었다. 트위터는 모두를 죽이고 나서 자기 자신도 죽을 것이지만 인스타그램은 점점 소멸하다가 떠밀리듯 공허 속으로 천천히 사라질 것이었다.

pp.66~67

삶에 관한 진실은 어떤 개념이 아니라 삶의 모든 생애 주기에 역동적으로 임하는 자세, 즉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성에 가까운 것이었다. 잘못된 질문을 던지다 보면, 결국에 시들시들한 삶으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구불구불한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질문은 소설이 삶에 출혈을 유발하고, 동시에 삶이 소설에 출혈을 유발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p.90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견해와 다른 사람들로부터 기대받는 견해를 구분할 줄 몰라요.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생각하는 것을 혼동해요. 거기다가 실제 자기의 모습과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도 마찬가지고요."

p.113

나에 대해 삼인칭 시점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삼인칭 시점에서 볼 수 있었다. 삼인칭 시점은 선택의 가능성을 소거해 버리는 시점이었다.

삼인칭 시선은 결국 삶의 중요한 두 측면, 즉 책임과 선택이라는 요소를 부정했다.

오직 일인칭 시점, 즉 모든 선택을 되돌릴 수 없는 동시에 변화시킬 수 있는 시점에서만 사람은 사랑을 할 수가 있었다.

pp.204~205

바람이 숲을 휩쓸고 지나갔다. 나무들이 넘실거렸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다시금 주변 환경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데 실패하면서 말이다.

내 소설에 대한 험담, 흐릿한 인터넷 이미지, 미처 보지 못한 행인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내 삶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사이에서 생각들이 왔다 갔다 했다.

내 생각들은 마치 원치 않는 팝업 창 같았다.

pp.236~239

조던 카스트로, <노블리스트> 中

+) 이 책을 50쪽쯤 읽었을 때, 그리고 100쪽쯤 읽었을 때, 그렇게 계속된 독서의 흐름 속에서 이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대체 이 남자는 언제 소설 쓰기를 시작할 것인가. 그러니까 그의 소설 쓰기의 그 시작점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되는 책이다.

이 소설은 철저하게 소설을 쓰려는 남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처음에는 하이퍼텍스트 소설 형식이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것과는 좀 차이가 있다. 서술자의 비연속적이고 비선형적인 생각의 구조로 가득 찬 소설은 맞지만 묘하게 그 생각의 그물이 소설 쓰기라는 목적 하에 일관성을 지닌다.

그러니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구조가 탄탄하게 소설을 이끌고 있기에 이 작품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잘 따른 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우리나라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지닌 형식을 장편으로 만난 기분이랄까.

작가는 이 책에서 본인과 같은 이름인 조던 카스트로의 SNS를 찾아 그의 삶을 염탐하곤 한다. 이는 자기 자신을 타자화하는 작가의 거리두기 전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남자는 소설을 쓸 때 일인칭 시점과 삼인칭 시점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며 그 시선이 구사할 수 있는 특징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시선을 소설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사랑의 방식에도 적용하며 사유를 이어나간다.

소설 속 남자를 조던 카스트로 작가로 보아도 무방하며, 동명이인의 다른 남자로 보아도 상관없고, 그 남자가 염탐하는 SNS 조던 카스트로 또한 작가 혹은 타인으로 생각해도 재미있다. 어떤 삶이든 그것이 삼인칭이 되면 타자화되는 것이고 일인칭이 되면 자기화되는 것이니 각각 매력이 있다.

작품 속 남자는 소설을 쓰기까지 많은 일을 한다. 주변 인물들의 SNS를 탐색하고, 차를 마시고, 바나나를 먹고, 똥을 누러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소설을 쓰려고 컴퓨터 창을 열어두지만 저런 행위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끝없이 이어가기만 할 뿐 소설을 쓰지 못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이렇게 소설이 된 것이다. 사실이나 픽션을 구분 지을 필요가 없으면서도 은근히 그것을 나눠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기는 소설이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지닌 욕망 혹은 욕구의 분출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소설 쓰기의 괴로움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현대인의 허상과 욕망을 SNS 탐색과 똥 누기, 소설 쓰기의 과정을 통해 리얼하게 풍자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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