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 - 경조증과 우울 사이에서, 의사가 직접 겪은 조울증의 세계
경조울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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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증은 가벼운 조증을 뜻한다. 조증은 쉽게 표현하자면 지나치게 기분이 들뜨는 것이다. 양극성 장애는 비정상적 흥분 상태인 조증 삽화와 비정상적 우울 상태인 우울 삽화가 주기적으로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병이다. 그래서 조울병 혹은 조울증이라고 불린다. 1형은 조증 삽화가 두드러지고, 2형은 우울 삽화를 주로 보이며 경조증 삽화가 함께 나타난다.

p.18

"엄마한테 어떤 말을 듣고 싶어요?"

"... 그렇게 느끼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땐 엄마가 실수했지만 나도 동생만큼 사랑한다고."

"그래요, 잘했어요."

꾹꾹 숨겨온, 적나라한 욕구를 기어이 내 입으로 뱉어내고 나서야 상담사는 나를 놓아주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해야 돼요. 봐요, 내 감정에 솔직해도 세상 망하지 않잖아요."

pp.78~79

이제 나는 환자들에게 정신질환을 인정하라고, 반드시 치료받아야 한다고 굳이 권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사회적 낙인이나 편견 때문에 생길 손해보다 치료받는 이익이 더 크면, 가세요."

p.160

"사람마다 역치가 달라요. 그리고 동료들 중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정말 없었을까요? 조울씨만 이런 우울을 겪은 건 아니었을 거예요. 사람들은 단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증상을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에요."

"조울씨도 의사잖아요. 암 환자들이 왜 자기가 암에 걸렸냐고 물으면 그냥 운이 나쁜 거라고 하죠. 마찬가지예요. 조울씨도 그냥 운이 나빠서 걸린 거예요. 남들보다 나약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pp.168~169

"그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도대체 뭘 해야 하죠?"

"조울씨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냥 물어보라고요? 뭐라고 물어야 하는데요?"

"엄마가 아기에게 하듯이요.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냐고 묻고, 뭐가 먹고 싶냐고 묻고, 심심하면 심심하냐고 묻고, 뭐 하고 싶냐고 묻고. 그냥 그렇게 하는 거예요. 거창한 건 하나도 없어요. 지금 해봐요.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계속 물어보세요.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으니, 대답을 듣는 데도 한참 걸릴 거예요."

"생각보다 별거 없죠? 그렇게 나를 들여봐주세요. 계속 관심을 가져요. 처음엔 습관을 들여야 하겠지만, 나중엔 숨 쉬듯이 익숙해질 거예요.

그냥 자연스럽게 다가가세요. 어떤 결정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위한 방향으로 내린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요. 그게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는 법이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pp.189~191

경조울, <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 中

+) 이 책은 2형 양극성 장애, 즉 조울증을 겪으며 조증과 울증 사이에서 방황하던 저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꽤 오랜 시간 조울증을 겪으며 그것이 조울증으로 의심되지만 믿고 싶지 않았던 저자의 마음부터, 병을 인정하기까지의 고통과 그 사실을 인정한 이후의 치료 과정 등을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의사이기 때문에 일반인에 비해 정신건강의학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런 질환을 앓는 중이라는 걸 쉽게 인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스스로를 지켜본 결과,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2형 양극성 장애를 치료받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방황과 착각의 시간이 있었다. 술에 의존하거나, 불면증으로 고생하며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거나, 자살을 생각하며 일상생활을 하기도 한다.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끝없는 외로움과 괴로움이 와닿아 마음이 아팠다. 의과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전문의가 되었을 때도, 그는 이 분야를 일반인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스스로 환자라는 걸 인정하기가 정말 어려웠으리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그는 용기를 내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을 만나며 치유와 치료의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상담을 받고 약물 치료도 하고 의사들이 권하는 사고의 전환도 해보며 그는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 병을 평생 함께 가야 할 귀찮은 질환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양극성 장애는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마음의 병을 이리 쿨하게 표현하게 되기까지 저자가 지나온 방황과 노력의 시간을 토닥여주고 싶다.

저자는 힘든 시기에 글을 쓰며 그 마음을 달랬고, 술보다 운동을 하며 불면증을 극복하고자 애썼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상대방을 만났다.

이 책은 2형 양극성 장애 극복기이지만, 정신건강의학 분야의 다른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적어도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에 공감하며, 마음 아픈 사람의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면서 가능성을 믿고 치료에 좀 더 마음을 쏟지 않을까 싶다.

솔직하게 적어내려간 이 책을 읽으면서 의사인 저자가 상당히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더불어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치료의 첫걸음을 떼보도록 작은 용기를 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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