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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기심의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 : 한중일 편 - 힘과 욕망이 만들어낸 동아시아의 역사 ㅣ 효기심의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
효기심 지음 / 다산초당 / 2023년 12월
평점 :
이때, 주나라의 왕실은 왕실과 제후국들을 화(華), 침략을 해오는 이민족을 이(夷)로 분류했죠. 여기서 이라는 글자를 한국에서는 '오랑캐 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화이사상 : 문명수준이 높고 천자를 섬기는 화와 천자를 몰라보는 오랑캐 이를 구분하는 사상
물론 '우리 집단'과 '느그 집단'을 구분 짓는 것은 사실 인간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화이사상에는 선민사상이 강하게 녹아 있다는 거죠.
pp.54~55
이와 같이 고려시대의 중국대륙 국가와 한반도 국가 사이에 있었던 조공책봉관계는 어렵게 꼬아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힘의 논리에 따라 약소국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강대국에게 머리를 숙여야만 했고, 동아시아에서는 머리를 숙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조공책봉관계를 맺었던 거죠.
p.76
과거 한반도 국가들은 실제로 중국대륙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았으며, 이게 자존심을 굽히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힘의 논리로 굴러가는 국제정치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죠. 부정할 필요도, 그렇다고 긍정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한반도가 누군가에게 또 고개 숙이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p.92
그러나 효기심은 국가의 전성기를 논할 때 영토 말고도 내부정치의 안정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땅이 넓어도 민심을 잡지 못하면 결국 국가가 여러 조각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몹시 크기 때문이죠. 청나라는 그 민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습니다. 비단 민족문제 때문만도 아니었죠. 민족차별은 청나라가 망하게 된 여러 원인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청나라에는 또 다른 분열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죠. 바로 관료들의 부정부패입니다.
p.262
혁명파의 거물인 쑨원도 중국대륙의 오랜 관념인 화이사상을 이용했습니다. 한족이 중심이고 나머지는 오랑캐라는 거죠.
p.310
이와 같은 국내외 정치적 상황을 거치며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이 중국 민족주의 핵심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이 단어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지만 사실 생각보다 근본도 없고 역사도 짧은 단어죠. 하지만 중국정부 입장에서 그런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56개 민족이 존재하는 중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국뽕도 채워주고, 역사도 왜곡해야만 하니 말이죠.
p.320
야마토 사람들끼리는 자기 나라를 계속 야마토라고 불렀지만 대외적으로는 '해가 뜨는 국가'라는 의미로 '일본'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천황께서는 태양신의 자손이시며, 신의 자손께서 만들어주신 율령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중국대륙의 권력자들이 자신을 신의 자손이라고 포장하며 천자 드립을 친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군주도 자신을 신적 존재로 만들려고 노력했죠.
p.339
그러나 천 년 넘게 권력을 휘둘러본 적이 없는 천황은 갑자기 주어진 권력을 올바르게 활용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일본 국민들의 목숨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에 급급해 일본을 패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군부의 결정들을 승인해주었죠.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수많은 국민들의 개죽음과 원자폭탄으로 인한 참상이었습니다.
p.438
효기심, <효기심의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 - 한중일 편> 中
+) 이 책의 저자는 유튜브에서 '효기심'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며 역사의 사실적인 흐름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콘텐츠로 제작하여 풀어내는 사람이다. 역사를 전공하고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그들이 쓴 책이 그것도 450쪽 분량의 꽤 두꺼운 책임에도 이렇게 재미있던 적이 있었나 돌이켜본다.
개인적으로 역사책은 두꺼울수록 따분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또 현대사가 아닌 그 이전의 동아시아 혹은 한국 역사는 학생 때 공부해온 정보의 반복 서술이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인 책이라고 느끼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건 편견이고 좁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치와 역사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명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한국, 중국, 일본의 고대 권력자들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천자'와 '천황'의 개념을 끌어들이는 것. 국가의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여러 민족들의 통합을 유도하는 사상, 이를테면 '중화사상'을 이용하는 것.
백성들의 안위보다 자기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조공책봉'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 권력자의 기반이 되는 종족을 이용해 내부 분열과 외세의 침입을 막아내는 것. 그 사이 생기는 내외부의 갈등에 칼과 총, 즉 무력으로 대응하는 것. 이처럼 역사의 이면에는 권력욕이 있고 또 그것의 길을 터주는 것이 바로 명분이었다.
저자가 마지막에 언급했듯이 '지금이라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늘 명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그 명분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겪었다. 오직 몇 명의 지배자들의 권력과 명예욕 때문에 말이다.
이 책은 과거의 역사만을 돌아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 과거를 살펴보며 현재와 미래의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는 방법들을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지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도와준 책이었다.
더불어 긴 분량의 역사책을 유익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굉장히 반가웠고 고마웠다. 저자의 또 다른 책을 읽어볼 용기와, 더불어 다른 역사책도 자주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
역사책 읽기에 지루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첫 몇 장만 읽어보아도 술술 읽히며 굉장히 재미있다. 성인이든, 학생이든 상관없이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재미있고 쉽게 접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권해주고 싶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