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 자기만의 방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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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평생 일하셨는데요, 혹시 명함 있으세요.

아뇨. 뭐 하러. 안 만들었어요.

ㅡ 그러네요. 인생이 명함이시니까요.

눈뜨면 내가 나갈 자리가 있다는 게 참 좋은 거예요. 예전엔 기도도 많이 했는데 이제 안 해요.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13% 손정애님 인터뷰

내 이름도 잘 얘기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엄마들 모임 가면 20년 가까이 만나도 본명을 모를 때가 많아요. 누구 엄마라고만 부르니까.

늘 내 인생이 뭐였을까 생각하면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밖에 없지 않나 생각했는데요. 이렇게 얘기해보니까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되네요. 지금까지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25% 장희자님 인터뷰

- 이름은 '필수적' 노동, 대접은 '선택적' 사용

필수노동 전반이 대접받지 못하며, 홀대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35%

어떻게 보면 엄마는 본인이 가진 자갈, 바위, 돌이 섞인 미운 흙들을 온몸으로 고르고 골라 고운 흙만 저에게 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장갑조차 낄 틈 없이 맨손으로 고르고 골라내느라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는데. 저는 엄마의 상처를 보려 하지 않고 내가 물려받은 흙들이 아직도 너무 거칠다고 불평만 했어요.

곱고 예쁜 흙들을 남겨주고 싶었는데 자식들에게 쥐여준 흙이 아직도 부끄럽고 미안한, 그게 일하던 엄마들의 마음이 아닐까 감히 가늠해봅니다.

44% 윤순자님, 마혜원님 인터뷰

도미 씨는 "'엄마', '할머니' 등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 노동을 숭고한 것으로 타자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건 숭고한 희생 같은 게 아니라 현실에 있는 일이자 나의 일로 인식해야 해요."

52%

울 시간이 있어야 울지. 울어도 달래줄 사람이 있어야 울지. 너무 힘들어서 '나는 못 살겠다' 하고 큰애를 업고 주문진 바닷가까지 나왔어요. 무작정 집을 나왔는데 이게 무슨 돈이 있어야지. 돈이 있어야 버스를 탈 거 아니래요. 하루 종일 바닷가에 앉아 있다가 할 수 없이 도로 걸어서 들어갔어요. 용감하지 않으면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들어요.

누구나 목표를 세우고 과한 욕심만 안 부리면 하고자 하는 걸 이룰 수 있어요. '하겠다'는 생각에 빠져서 자꾸자꾸 키워가면 돼요. 지금은 부러운 것도 없고 시골에 살아도 멋있어.

56%~58% 이광월님 인터뷰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中

+) 이 책은 시대를 떠나 우리 곁에 언제나 존재하는, '끝없이 일하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할머니 혹은 엄마로 불리며 희생이 희생인지도 모른 채 당연한 것으로 치부된 삶을 산 사람들이 그들이다.

아마 처음에는 기획 기사로 제작된 인터뷰였던 것 같은데, 추후 더 많은 여성들의 인터뷰를 담아 책으로 엮은 듯 보인다.

여성들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에 길들여져 스스로의 이름을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을, 책에서 언급했듯이 '타자화'하기 보다 '현실에 있는 일이자 나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표현에 공감했다.

'여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혹은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려, 그들이 어렵고 힘들게 해내는 모든 일들의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피하지 않고 꿋꿋하게 그 일들을 해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주변 여성들이 많이 생각났다. 가정주부이든, 워킹맘이든 가족 울타리 안에 있는 그 어떤 여성도 자기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그들은 두세 배의 일을 더 하면서도 늘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참 모순적이고 아픈 현실이라고 느낀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 지어 하나하나 따져보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지금껏 몇 십 년을 당연한 듯 일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살아온 여성들의 노력과 마음을 인정하고 그들의 시간을 존중하자는 의미이다.

희생이든 배려든 양보든, 그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그들이 견딘 시간과 노력과 샘솟는 애정이 지금의 우리를 존재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 속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현실에 있는 일이자 나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됐다. 사회 구조적인 모순의 개선과 더 많은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확히 드러낸,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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