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굴을 찾고 있어 바일라 18
김혜진 지음 / 서유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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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 소리가 나고 웃음과 비명이 들리면, 그 자리엔 언제나 서루아가 있었다.

주변을 다 끌어들이는 작은 허리케인 같은 애. 같은 반이 된다면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 거다. 시끄럽겠구나. 그리고 안전하겠구나. 서루아가 있는 반에서는 갈등이 오래 가질 못했다. 서루아는 눈치 보는 일 없이 예민한 선들을 다 밟아 버렸다.

p.32

"박물관 좋아해?"

"응. 그러니까, 어...... 물건들이, 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그런 느낌이라서?"

p.41

지금 이런 책을 보고 있을 때가 아닌데. 경주며 남산의 불상, 신라는 시험 범위가 아닌데.

그렇지만 시험 범위 안에 있는 정보들을 외워 답을 써 넣는 것보다, 헛발질하라고 꼬아 놓은 보기들 사이로 휘청이며 걷는 법을 익히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p.58

"신기한 게 너무 많아. 그 순간엔 정말 그런 기분이 들어. 근데 그게 너무 짧아. 신기한 마음이 지나간 다음에도 거기 붙들려 있어야 하잖아. 그럴 때, 진짜 싫어."

"붙들려 있는 게?"

"아니, 계속 신기한 척해야 하는 게. 나는 너무 빨리 올라가고 빨리 내려와. 이미 마음은 멀어졌는데 몸은 거기 남아서 안 그런 척하고 있지."

p.87

"근데 이게 더 낫지 않아? 답이 정해진 것보다, 뭐라도 답이 될 수 있다는 게."

정해지지 않은 답을 얻으려면 정해지지 않은 길로 가야 한다. 남산에서 불상을 찾아낸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길처럼 보이지 않는 길로 가고, 잃었다가 다시 찾고, 그러다가 얼굴을 발견했을 것이다. 보리라 예상하지 못한 얼굴을.

그러니까 우리도 길을 잘못 든 게 아니다. 지금이 잘못된 게 아니다.

pp.178~179

김혜진, <우리는 얼굴을 찾고 있어> 中

+) 이 책은 청소년 소설로 세 명의 아이들이 우연히 박물관에서 만나며 서로의 고민과 생각을 이해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고민과 생각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자기도 모르게 한두 마디 주고받는 과정에서 알게 된다.

여러 명의 학생이 모인 반에서 단짝을 찾는 과정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은 어린 나이부터 사회생활을 배우게 된다. 어쨌든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럴 때 가장 무난한 스타일의 친구가 바로 소설 속 '서루아' 같은 친구다. 요란하게 수다스럽지만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친구. 하지만 그만큼 사건사고도 동반할 가능성이 있어서 약간의 거리를 두게 만드는 친구.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에서도 틀린 길로는 가지 않을 것 같은 우등생 '지태희', 어쩐지 가까이 가기에는 좀 차갑게 느껴지는 이 친구와 서루아가 함께 있는 걸 '이해솔'이 보게 된다. 루아와 태희가 친했나 곱씹어 볼 정도로 둘이 어울리는 게 신기한 해솔.

이해솔은 학교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소리 없이 조용히 지내는 그런 친구이다. 스스로 혼자임을 낯설어하지 않는 친구. 그러면서 누가 다가와도 밀어내지는 않는 의외로 편한 친구.

이 셋이 우연히 박물관에서 만나게 되며 소설은 시작된다. 그 우연한 만남은 어색하지만 점점 은근히 기대되는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각자 나름의 고민과 비밀을 간직한 셋의 관계를 통해, 작가는 청소년들의 일상과 그 속에 담긴 진중한 고민들을 사실적인 묘사로 잘 드러낸다. 사람(친구) 사이의 관계 맺기, 가족 간의 애정과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가치 등등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참 잘 썼다'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작가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며, 친구가 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그려낸다. 또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걱정과 아픔을 용기 있게 감당하는 모습을 제시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그들을 열심히 응원하게 만든다.

이 책은 청소년들이 보아도 좋고, 어른들이 보아도 좋은 작품이다. 진지한 내용을 흥미로운 스토리로 담아냈고, 의미 있게 구성했다는 점에서 배울 부분이 많다. 청소년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권해주고 싶은 참 잘 쓴 소설이라고 느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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