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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인연이라는 게 참 이상하기도 하지. 인연이 아니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를 붙잡을 수 없어.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도 인연이 다하면 한순간에 낯선 이들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가끔은 그 어떤 변수에도 상관없이 영원히 너에게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지. "
pp.93~94
"게다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나오는 것보다 신나는 것도 없거든. 슬플 땐 그걸 기억하렴."
p.102
"사람들은 자신이 돈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종종 그들 대부분이 사실 돈 아닌 것을 원하고 있다는 걸 깨닫곤 해요."
"그들은 돈 많은 부자가 되는 게 자신의 최종 목표라고 말하는데, 그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인정하는 것보다 그냥 그렇게 말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나요?"
p.290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며, 대다수는 그중 첫 번째 범주에 속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이 현재의 상태에서 성공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 그러고 나면 자신의 삶에 주어진 운명을 합리화하고 그 자리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아의 상승과 확장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말이다.
성수는 자신의 비범한 행운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천박하거나 무지하지 않았다. 가끔 그는 인생이 불공평할 정도로 자신에게 관대하다고 느끼곤 했다.
pp.387~388
"자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갖게 만드는 건 세상에 딱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본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는 것이죠."
p.564
김주혜, <작은 땅의 야수들> 中
+) 이 책은 1910년부터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은 격동의 세월을 배경으로 삼은 장편 소설이다. 약 600쪽의 방대한 분량이라 재미가 없으면 어쩌나 솔직히 걱정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첫 장면, 즉 호랑이와 사냥꾼의 긴장감 넘치는 대치 상황부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 속 장면이 떠오를 만큼 흡입력이 높고 흥미롭다. 구한말 일제강점기 초, 우리 민족이 굶주림과 일제의 핍박에 시달리던 시기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아직 기생들이 있던 그 시절, 그때 그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금을 대주던 모습이 이 책에 실려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도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을 수도 있겠다는 걸 느낀 부분이었다.
어린 딸을 기생집에 보낸 건 거기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청소와 빨래 등 허드렛일을 하길 원해서였다. 옥희의 부모는 그거라도 하면서 아이가 굶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은실은 첫눈에 옥희를 기생의 삶으로 끌어들인다.
피눈물 흘리며 돌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옥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옥희 입에서 먼저 여기서 일하겠다는 말을 듣게 된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이렇듯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에 어려움을 겪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어린아이들을 통해 집중적으로 담아냈다.
사냥꾼 아비를 잃고 고아처럼 떠돌게 된 정호, 어머니와 누이를 먹여살리기 위해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한철, 기생인 어미가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낳아 부족한 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연화 등등
이 아이들이 자라 결국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까지 극화한 내용이었지만, 그들이 어렸을 때의 생각과 상황부터 읽었기 때문에 더 인물 캐릭터에 빠져들며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일제강점기 피폐한 삶을 사는 민중의 모습,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지식인의 모습, 자기 안위를 지킬 것인지 나라를 위해 일할 것인지 망설이는 소극적 지식인의 모습, 좌파와 우파의 대립에서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의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여하는 민중의 모습 등을 잘 그려냈다.
이 작품은 처음과 끝에 모두 호랑이가 등장한다. 아마도 우리 한국인의 기개를 호랑이의 위엄에 빗대는 작가의 전략이지 않나 싶다. 단 두 장면이지만 그만큼 호랑이의 아우라는 이 소설 전반에 흐르는 우리 민족의 성향을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좌우의 이념 대립 등을 소재로 한 여러 편의 영화를 쭉 살펴본 기분이 든 책이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진지하게 담아낸 소설임에도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