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재영씨
신재영 지음 / 에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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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소년이 재미있는 질문을 했다.

ㅡ 남자 친구 있어요?

ㅡ 왜?

ㅡ 그냥요?

ㅡ 넌 여자 친구 있어?

ㅡ 네. 근데 결혼 하셨어요?

ㅡ 왜?

ㅡ 몰라요.

소년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것 같았다.

ㅡ 넌 언제 결혼할 건데?

ㅡ (한숨을 푹 쉬더니) 아니 내가요, 집에 10시나 돼야 들어가요. 그래서 결혼을 할 시간이 없어요! 그게 왜 그러냐면요, 학원에 가야 해서 그래요. 학원 끝나고 집에 가면 자전거 타고 아무리 빨리 가려고 해도 10시가 돼버리거든요!

ㅡ 저런, 그래서 결혼을 못했구나!

pp.23~24 [라면 소년 2]

ㅡ 과일 뭐 달착지근한 거 없대유?

ㅡ 있어요. 오늘은 참이슬 안 사세요?

ㅡ 잉.

ㅡ 접때 아주머니 오셔서 술 사시면 말리라고 하셨거든요. 걱정 엄청 하셨어요.

ㅡ 흐흐흐흐, 그이는 걱정하는 게 일유.

ㅡ 아저씨 위해서 기도 매일 하신대요.

ㅡ 하너님 좋아 그르지 나 좋아 그르는 거 아뉴.

ㅡ 여튼 과일만 사시는 거 맞죠?

ㅡ 잉. 나 저그 뭐여. 거 뭐여 거...... 포항 가유 인자. 아주 가는규.

ㅡ 포항이요?

ㅡ 잉. 거그에 울 아덜 살유. 포항제철다뉴.

ㅡ 어머, 직장 좋은 데 다니시내요.

ㅡ 잉. 가믄 술 일절 못 묵어. 아덜이 뭐라 해싸서 클나유.

2주 후.

ㅡ 안녕하세요! 아저씨 포항에서 잘 지내시죠!

그녀가 고개를 돌리더니 방향을 틀어 재영씨에게 다가왔다.

ㅡ 그걸 그쪽이 어떻게 알아요?

ㅡ 접때 아저씨가 오셔서 말씀하시더라고요. 포항 아들네로 아주 가신다고요.

그녀는 재영씨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퉁퉁하던 얼굴이 많이 까칠해져 있었다.

아주머니 눈두덩이만 퉁퉁했다.

ㅡ 무슨 일 있으세요?

ㅡ 나 지금 아저씨 상 치르고 오는 길이에요.

사람은 단 하루만 산다. 어제는 이미 없고 내일은 원래 없는 것.

잃어버린 엄지손가락 만나러 아저씨 먼 길 떠났나보다.

pp.74~76 [엄지손가락 2]

허리 아픈 엄마가 왔다.

ㅡ 허리는 좀 어때요?

ㅡ 나 복대 차고 왔어야.

ㅡ 아이고, 어지간히 아프신가봐요. 접땐 복대 차고 다니래도 안 한다고 그러시더니.

ㅡ 짐치 담가랄라서 것 좀 했더니 이러네 도.

ㅡ 내가 김치 담그지 말랬잖아요!

ㅡ 아이 그럼 워떡햐. 딸도 달라 그러구. 101동(동대표 아줌마)도 달래는디.

ㅡ 하지 마요 쫌! 자기들이 먹을 거니까 직접 담가 먹으라고 하란 말이야!

(허리를 겨우 숙여 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 뒤적거리며) 이거 다섯 개 사믄 돈이 반이여?

ㅡ 네. 속에 불이 나시는가보지? 하하하하하.

ㅡ 그니까 김치 해달라고 해도 허리 아파서 못한다고 좀 해요. 응? 엉?

ㅡ 아이그 알았어야. 으흐흐흥. 점심 어디서 먹냐 너.

ㅡ 집에서 먹고 오지 난.

ㅡ 여서 사 묵지 말구, 짐치랑 밥 찌끔씩 싸가지고 여서 먹구 구랴.

ㅡ 2시에 출근해서 그냥 집에서 먹고 나와요. 난.

ㅡ 그랴? 그럼 내가 짐치 좀 싸다주께.

ㅡ 아이고야! 싫어!

ㅡ 왜 시려. 많이 담갔어 야.

ㅡ 아이고 내가 그 김치 먹게 생겼어요 지금? 엄마 허리 뜯어 먹게 생겼냐고, 진짜 딸내미나 먹지. 난 안 먹어!

pp.159~161 [허리 아픈 엄마]

재영씨는 관대하다.

ㅡ 형님, 내가 편한 방법 말고 남이 편한 방법으로 해주셔야 해요.

ㅡ 남이 편한 방법? 아이고,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참나.

ㅡ 하이고, 좀 천천히 불러봐요 좀. 재영씨 승질 은근 급하네 거참.

재영씨는 관대할까?

ㅡ 형님. 일 배우실 때는 좀 떫어도 그냥 알겠다고 하고 하셔야 해요. 안 그러면 어디서든 일 배우기 힘들어요.

재영씨는 관대해야만 했다.

ㅡ 자, 오라버니 잘 보세요. 이렇게 이렇게......

ㅡ 저렇게 저렇게......

ㅡ 자, 오라버니 토 달지 마시고 이렇게 이렇게...... 해보세요...... 그렇죠 그렇죠! 거봐 되잖아요. 잘하시면서 왜 그래요 왜!

오빠가 되고 싶었던 형님은 오래지 않아 어떤 아들 뻘 손님에게 멱살을 잡힌 후 일을 그만두셨다.

pp.271~274 [형님]

신재영, <편의점 재영씨> 中

+) 저자는 6년간 편의점에서 일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일화를 유쾌하면서 다정하게 그리고 쿨하게 이 책에 담아냈다. 책을 읽으면서 편의점 속 작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곳은 어쩌면 꽤 큰 세상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 상대하는 재영씨의 성격이 어찌나 좋은지 다양한 사람들에 맞게 적절한 화법과 태도로 대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진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않나 싶었다. 또 관심이 있어야 더 가능한 일이고.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사실 그 어느 장소보다 개인주의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과의 특별한 연결점이나 관계없이 자기만의 시간과 상황을 간직해도 편한 곳. 아주 잠깐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도 되는 곳. 그런 장소가 아닐까.

그런 곳에서 재영씨는 인연을 만들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관계를 형성해간다. 읽다 보니 재영씨는 마흔이 좀 넘은 미혼의 아가씨 같았는데, 이런 여유 있고 구수한 유머와 화법을 구사할 수 있다니 참 재치 있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읽으면서 몇 번을 웃었고, 또 어느 순간은 가슴이 먹먹해졌고, 또 어느 때는 마음이 아팠고, 그러다가 다시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폭소하며 웃어댔다.

이 책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짤막한 단상으로 담겨 있으며 각각의 사연 하나하나가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이런 책을 미니 드라마 형식으로 잘 만들어보면 삭막한 시대에 훨씬 아름다운 온기가 피어나지 않을까 싶다.

유쾌하게 웃고 싶은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여유롭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본다. 인간미가 넘쳐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작은 편의점 속 큰 세상을 만나며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시원하게 웃으며 즐겁게, 단숨에 읽은 책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마무리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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