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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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저에게는 '인간이 목숨을 부지한다.' 라는 말의 의미가 지금껏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 p.16

 

  나한테는 재난 덩어리가 열 개 있는데, 그중 한 개라도 이웃 사람이 짊어지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는 충분히 치명타가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일도 있습니다.

  즉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웃 사람들의 괴로움의 성질과 정도라는 것이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용적인 괴로움, 그저 밥만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해결되는 괴로움. 그러나 그 괴로움이야말로 제일 지독한 고통이며, 제가 지니고 있는 열 개의 재난 따위는 상대도 안될 만큼 처참한 아비지옥일지도 모릅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도 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다. 괴롭지 않은 게 아닐까?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한번도 자기 자신에게 회의를 느낀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편하겠지. 하긴 인간이란 전부 다 그런거고 또 그러면 만점인게 아닐까.

                                                                          - pp.16~17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 p.62

 

아아, 저에게 냉철한 의지를 주소서. '인간'의 본질을 알게 해주소서. 사람이 사람을 밀쳐내도 죄가 되지 않는건가요. 저에게 화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 p.90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中

 

 

+) '인간 실격'이라는 말에 앞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이다. 인간에게 어떠한 자격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우린 때로 '인간같지 않다' 혹은 '인간답다' 등의 말을 사용한다. 상황마다 '인간'에 주어진 의미가 다르겠지만, 그것을 아우를 수 있는 정의는 없는 것일까.

 

작가는 주인공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는데, 거기서 드러나는 인간에 대한 중얼거림이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어린 아이의 심리묘사치고 능글맞은 표현들이 좀 거슬리긴했지만, 화자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돌아보고 있는 시선이었으므로 견딜만 했다.

 

'익살'로 다른 인간들과 교류하기 위해 애쓰는 그의 태도가 안쓰러웠는데, 세상에서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라면 굳이 그 속에 파고들려는 이유가 있을까. 인간에 대한 불신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동시에 갖고 있는 화자는 믿음보다 불신의 골이 더 깊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적이지도 않았기에 순간순간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삶을 살았는데, 그것이 '방탕한 생활'을 조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핑계다.

 

화자는 처음부터 인간에 대한 불신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핑계로 내새우고 있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익살을 부리고 방랑자적 삶을 살지만, 역시나 변명에 불과하다. 폐인의 삶으로 마무리지으면서 그는 말한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라고. 사실 그에게는 처음부터 행복도 불행도 없었다. 그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인간 실격, 그것은 주체의 의지에 따라 혹은 객체를 바라보는 주체의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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