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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사람들 ㅣ 시작시인선 16
김신용 지음 / 천년의시작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꿈꾸는 자의 잠
병속의 새는 날개 꺽꺽 울고 있다
창살에는 구름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걸려 있고
숨어 몰래 뺑끼통의 시멘트 바닥에 갈고 갈아
날을 세운 칫솔대로 성기에 타원형의 플라스틱
다마를 박으며, 마치 나래처럼
황홀히 사지가 뒤틀리게 생살을 뚫는 아픔으로
꿈틀거리며, 날고 싶어
숨어 몰래 피우는 담배 한 모금, 온몸 마비시키는 그 살아있음의 확인
입고 있던 내의마저 벗어 맞바꾸며
꿈꾸는 짐승의 뱃속에서의 잠.
그러나 목이 좁아 꺼낼 수도 깨드릴 수도 없는 병 속의 새,
화두가 적힌 책을 덮으며 일요일
늦가을 적막이 깔린 뒷뜰에는 오동잎이 지고
관자재보살도 일체고액의 발자국 남기며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
계간을 하다 독방에 갇힌 무기수의 새 한 마리
창살 밖으로 아무리 날려 보내도 되돌아오는 새
밥알을 씹어 먹이를 주어도 끝내 거부하며 굶어죽어간 새
그 불가사의한 죽음에 머리 갸우뚱이며
다마를 박으며, 배 터진 개구리의 뜨거운 피를 탐닉하며
마치 이카루스처럼
그렇게 나래를 만들며, 출감 때
해를 향해 날아오르고 싶어 꺽꺽거렸다
영혼이라는 올가미에 목을 매달고......
김신용, 『버려진 사람들』中
+) 시인의 자전적 진술로 이루어진 이 시집은 직접 체험한 듯한 소재들로 이루어졌다. 감옥에 갇히고, 가난한 지게꾼이 생활을 하며, 잡부일을 하던 그의 삶이 진실하게 녹아 있다. 자유의 억압과 가난의 고통이 시인을 괴롭게 만들었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화자의 과거와 현재는 불행하고 가난하지만, 그에게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화자가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한, 화자가 미래를 꿈꾸고 있는 한 그에게 모든 것은 희망이 된다. 그것은 버려진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그들을 버렸을지언정,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지키고 있따면 그들은 반드시 일어날 수 있다. 화자에게 느껴지는 허기는 가난만이 아니다. 자유의 억압, 불공평한 세상 등이 사람으로서의 허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콘돔, 질, 자궁, 성기, 음모 등의 성적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세상에 표출하고 싶은 화자의 분노라고 생각된다. 화자는 강한 이미지의 언어로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분노의 빛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 내면의 숨은 욕망 표출일 것이다. 세상의 가장 근원에 닿아서 다시 밖을 향해 시선을 보내는 것, 그때의 심리를 이끌어낸 시집이다.
마치 연작시처럼 전체 시의 구성이 일관성있게 구성되었다. 자전적이고 체험적인 시집으로 한 권의 이야기 책 같다. 꿈을 버리지 않는 버려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의 시집에는 현실이 녹아있다. 그런데 그것과 더불어 꿈도 녹아있다. 환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소망하는 간절한 바람이 그 꿈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