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이라고 아마추어는 아닙니다
이헌주 지음 / 모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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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곧 '무명'이라는 말이 싫었다. 배우로서 무명과 유명이 실력 차이라는 인식을 부정했다. 무명이라고 대충대충 설렁설렁 어설픈 아마추어가 아니다.

나는 가끔 이름을 가진 배역을 얻기도 했고, 또 가끔은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선생님 역할을 연기했다. 지금도 이름 없는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배우들이 많다. 그렇다고 그들의 역할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한낱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그럴진대, 우리 삶에서는 누군가 내 이름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삶은 귀하고 유의미하다.

pp.6~7

내가 생각보다 말에 약한 사람이라는 걸 안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지나가는 작은 말 한마디에도 움츠러들곤 했다. 나에 대한 확신보다 남의 말에 휘둘린 시기였다.

질투나 시기에 가득 찬 말이 아니어도, 막연히 동경으로 치켜세우는 말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치켜세움에 어찌할 바 몰랐다. 나는 그때 적절한 거리 두기를 배웠다.

파리에서는 동양에서 온 이방인, 돌아와서 나는 또다시 이방인이었다.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조금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들이 나를 상대로 화살을 쏜 건 아니다. 어쩌면, 내 감정은 나를 인정해 달라는 욕구가 깔려 있었던 듯 싶다.

소수의 사람 때문에 움츠러드는 것은 어리석었다. 나는 그들의 편견에 편견을 갖고 있었다. 이 또한 나의 오만임을 인정했다.

pp.112~117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건 용기와 같다. 종종 '노'를 외치며 주변 사람들과 얼굴을 붉혀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문제일 뿐 그 결과로 나의 의견이 존중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p.129

배우에게 기다림이란 숙명이다. 긴 기다림의 여백을 무엇으로 채워갈지는 나의 선택이었다. 나는 멈춤 대신 뚜벅뚜벅 걷기를 선택했다.

내 불평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면 나도 계속 신세한탄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태도로는 어떤 기회도 얻을 수 없다. 삶의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뭐라도 좋다! 방법은 늘 있다.

뚜벅이 프로필 투어는 배우들에게 일상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여전히 계속되는 배우들의 일과 중 하나이고, 나머지는 기다림 혹은 촬영이다.

정답도 해결법도 없다. 그저 오늘도 뚜벅뚜벅 걸을 뿐이다.

pp.148~149

경력이 많다고 프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라도, 마음이 느슨해지는 그 순간 누구나 아마추어로 전락한다. 또 경력이 적어도 준비와 태도가 프로라면 그 사람은 이미 프로다. 실력은 좀 부족할 수 있지만 '유비무환'의 자세를 지닌 사람의 실력은 그 누구보다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pp.201~202

나의 선택에 후회 없이 달려들고 결과는 맡겨야 한다. 내 손을 떠난 결과는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준비한 시간은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고스란히 나의 근력이 된다. 나의 자산, 나의 힘이 된다. 실패해도 된다. 실패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p.226

글쓰기를 시작한 후 바뀐 일이 있다면, 일단 새로운 세계든 뭐든 나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그어 놓은, 할 수 없다는 선을 넘는 순간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변명일 뿐이었다. 일단 하겠다고 마음 먹으니 틈을 내게 되고, 어떻게든 할 수 있게 되었다.

p.252

이헌주, <무명이라고 아마추어는 아닙니다> 中

+) 이 책의 저자는 배우다. 이름이 익숙한 배우는 아니지만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배우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유명과 무명, 프로와 아마추어의 정의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그 단어들의 정의 자체를 바꿀 필요는 없겠지만, 그 단어를 붙여 쓰는 대부분의 표현에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을 반성할 필요는 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 이름을 알기 힘든 것. 그건 그 단어의 정의일 뿐인데, 우리는 배우라는 말 앞에 유명, 무명이라고 붙이면서 그들에게 선을 긋거나 틀을 만든다.

저자의 말처럼 무명 배우라고 해서 아마추어는 아닌데 사회는 은근히 그들을 아마추어 취급을 한다. 그렇다면 또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그것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자세와 연기를 하는 마음가짐으로 설명한다. 경력이 많다고 프로가 아니라, 항상 열심히 준비하고 연기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 프로인 것이다.

파리에서 연기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배우 생활을 이어가는 저자는 파리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방인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저자를 판단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그 뒤에 깔린 배경이었는데, 그런 편견에 아파하던 저자는 정공법으로 그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이 책을 읽으면 수많은 배우들이 작품에 캐스팅되기까지 어떤 노력을 하는지,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어떤 생각으로 지내며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또 연기를 할 때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배우로서 자신이 겪어온 시행착오의 과정까지 솔직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와, 한 아이의 엄마와, 부모의 외동딸로 저자의 마음과 일상생활을 담고 있다. 그 모든 역할을 배우로서의 삶과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하고, 그 가정 내 역할들에서 몰랐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꾸준히 뚜벅뚜벅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택과 결정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실패해도 괜찮으니 후회 없이 달려들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라는 응원해 주는 책 같다.

또 자기 한계를 정하지 말고 스스로 정한 선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든 핑계에 스스로를 가두고 그 틀을 깨려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았다. 저자의 용기와 응원에 깊이 공감한 책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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