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 알았다 - 삶의 모퉁이에는 볼록거울이 있다
김경순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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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풀들과의 씨름에 한나절이 휙 지나갔다. 이 풀들도 지금 이 순간 인생의 쓴맛을 보는 중이리라.

쓴맛은 꼭 필요하다. 삶이 달기만 하다면 보람이라는 뿌듯함도 용기라는 소중함도 알지 못한다. 검정고시를 준비하시는 분들은 60대에서 80대시니 하나같이 공부가 정말 힘들고 어렵다고 하신다. 그동안 쓰지 않던 머리를 쓰려니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쓴맛은 입맛을 돌게 하고 우리의 장기를 튼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공부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삶의 심장을 튼튼하게 만드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p.16 [쓴맛]

코로나로 두려운 건 사람뿐이다. 자연은 조용하고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 왔다. 북적이고, 요란한 건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이러스를 만들고 불러온 것도 사람의 욕망과 욕심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고통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작고 힘없는 동물들을 원망한다. 바이러스를 옮길까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작은 발소리에도 물오리들은 물살을 가르며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바쁘다. 어쩌면 물오리들은 이미 적당한 거리를 터득했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거리. 우리 사람만이 그 거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p.35 [변명]

꾸준함, 모든 시작은 작았다. 어쩌면 사소했을 그 이유가 나중에는 아주 대단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사소한 일상이 소중한 순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거창한 계획도 행동도 아니다. 다만 꾸준히 이어지는 관심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마음뿐이었다. '리추얼', 일상을 대단하게 만들어 준 사소함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p.55 [사소해서 대단해졌다]

좋건 나쁘건 경험은 중요하다.

p.142 [겨울눈]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점점 혼자가 되고 가벼워지기 위해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자신에게 지워진 짐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리 서러워할 일도 안타까워할 일도 아니다.

pp.162~163 [길을 가다 문득]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멀어지면 불안하고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부담스럽다. 이상적인 관계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일까.

이상하게도 사람의 관계는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싫었다가도 좋고, 좋다가도 어느 순간 싫어지게 된다. 그런데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다.

pp.164~166 [관계의 덫]

김경순, <그럴 줄 알았다> 中

+) 이 책은 짤막한 단상의 수필을 모아 엮은 것이다. 굳이 에세이집이라는 표현보다 수필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도 전반부의 글들을 읽으면서, 수필이란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며 달라진 사회 모습과 사람들의 일상, 학회 및 여행을 위해 해외로 나가서 겪었던 체험,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본인의 집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수필을 썼다.

대부분의 소재는 자연, 생명, 그리고 사람이다. 저자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작은 것들부터 멀리 있는 것들까지 관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늘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이치를 하나씩 깨닫곤 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그들을 어루만지는 다정한 저자의 마음과 안쓰럽게 여기는 연민의 시선이 녹아있다.

식물이나 동물 등의 자연, 즉 우리와 함께 사는 여러 생물들을 보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방식을 반성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욕심으로 만든 재앙을 자연이 대신 겪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성찰하는 글을 썼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참 공감했던 부분이, 자연은 늘 그대로였는데 우리 인간이 욕심과 욕망으로 요란을 떠느라 혼란한 상황이 왔다는 이야기이다. 자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금도 있다는 말이 와닿는다.

그간 읽었던 에세이 형식의 글들도 좋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전형적인 수필은 이런 형식으로 쓰는구나 하고 느끼며 배운 것 같아서 도움이 되었다. 전통적인 수필에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무장한 글들이 많은데, 이 책의 문장은 적정선을 찾아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담백하고 쉬운 언어와 조금은 낯선 우리말을 적당하게 버무린 저자의 문장들을 볼 수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자연과의 사이에서도, 사람 사이에서도,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걸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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