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나사의 회전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6
헨리 제임스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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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모든 것을 그렇게 맹목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 길고도 어려운 노력을 그 정도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동지인 그로스 부인과의 결기 덕분이기도 했고, 내가 마법에 걸린 듯한 상태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 열정과 연민으로 들떠 있는 상태였다. 무지와 혼돈에 싸여 있었고, 거기에 자만심까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이제 막 세상을 향해 첫 걸음을 떼어야 하는 마일스의 훈육을 전담하는 일을 가볍게 여겼던 것 같다.

좁고 억압되었던 나의 지난 삶에서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배웠던 것이다. 즐거움을 느끼고, 남을 즐겁게 하는 법을 배웠으며,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삶을 배웠다. 난생처음으로 공간과 공기, 자유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여름의 음악과 자연의 신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배려가 있었다. 배려를 경험하는 일은 감미로웠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상상력과 예민함, 그리고 허영심에 놓아진 덫이었다.

pp.41~42

그로스 부인은 유령의 그림자는커녕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그 집에서 오로지 가정교사인 나 혼자 그 곤경을 직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정신 건강을 대놓고 비난하거나 의심하지 않았으며, 내 말을 진실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러고는 경외감을 가진 채로 나를 따듯하게 대해 주고, 나를 이해한다는 표시를 해 주었다. 그러한 따듯함은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중에 가장 너그러운 인간의 숨결로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p.66

내가 그로스 부인을 보고 있는 것처럼 어린 플로라가 유령을 본 것이 확실한데도 내가 왜 다른 망상에 빠져서 그 일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았는지를 해명하고, 그럼에도 플로라는 자기가 유령을 본 것을 내게 숨기려고 했으며, 동시에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유령을 보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들을 구구하게 설명하는 것은 또 얼마나 곤욕스러운 일이었는지!

p.88

"마당에는 언제 내려간 거지?"

"자정에요. 나쁜 아이가 되기로 마음먹으면, 저는 제대로 나쁜 아이가 되거든요!"

p.117

"학교 생활이 즐거웠니?"

마일스는 잠깐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저는 어디서든 행복해요!"

p.138

헨리 제임스,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나사의 회전> 中

+)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외부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전날, 고가에 모여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더글라스는 '나'를 비롯하여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유령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내용이 적힌 원고를 읽어가는 형식으로 내부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때의 서술자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가정교사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외부 이야기의 '나'와 내부 이야기의 '나'가 일치하지 않고, 외부 이야기의 서술자가 누구인지 불명확한 상태로 소설은 진행된다.

이 소설은 1898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모더니즘 소설의 시초, 의식의 흐름 기법을 제시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서사가 진행될 때 좀 파격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점이 평가의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오직 가정교사 혼자만 보고 있는 유령은 정말 유령이 맞는지, 플로라와 마일스 두 아이들이 유령을 보면서도 정말 모르는 척하는 것은 맞는지, 그로스 부인은 정말 유령을 보지 못하는 건지 등등 이 소설의 모든 장면은 읽을수록 의구심이 든다.

두 아이들의 보호자인 삼촌은 가정교사에게 왜 절대로 자기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지, 그로스 부인이 말한 퀸트와 예전 가정교사의 죽음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지, 이 저택에서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서술자인 가정교사의 말은 모두 진실인지 등 읽을수록 헷갈리고 이전 내용을 다시 확인하게 하며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가정교사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이 정말 있는 것인지, 아이들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에서 가정교사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게다가 내부 이야기를 전달하는 더글라스가 이 원고를 갖고 있다면 혹시 그가 마일스는 아닐지, 내부 이야기의 열린 결말 구조 때문에 또 고민하게 만든다.

소설은 계속 돌고 돈다. 인물들의 언행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게 만든다. 심리공포 소설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스릴러 소설이란 표현도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작가가 숨겨둔 소설 속 다양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본래 이 소설은 만연체로 문장의 길이가 긴 편이라 읽기 쉽지 않지만 천천히 문장을 곱씹으면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상황과 모호한 서사가 긴 문장과 잘 어우러져 만연체 문장의 매력도 맛보았던 것 같다.

액자식 구성이나 열린 결말로 인해 외부 이야기 자체가 내부 이야기처럼 와닿아, 결국 이야기의 틀까지 모호하고 몽환적이게 만든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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