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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아파하고 적당히 슬퍼하기를
김동근 지음 / 부크럼 / 2023년 2월
평점 :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지켜 주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지켜 줘야 할 덕목 중 하나다.
p. 31 [덕목]
그때, 지는 해거름에 그을린 얼굴이 참 많이 예뻐 보였는데.
그래, 행복이 뭐 별건가.
어딘가로 옮겨 놓을 푸른 시선이 있고 온실처럼 따뜻한 순간들을 마음 안에 들일 수 있으면 그게 바로 행복이지.
행복은 의외로 소소함에서 오니까. 그 소소함이 모여 여운처럼 오늘을 살게 하고.
p.44 [헤이즐넛]
그래, 삶이 항상 봄날일 수는 없겠지.
그런데 나는, 네게 굳이 아플 일이 생겨도 적당히 아파하고 적당히 슬퍼하고
그러다 날이 적당한 봄이 찾아오면 입춘을 앞두고 강변에 모여드는 새처럼
적당히 일상으로 돌아가서 너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좋은 사람들과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행복했으면 좋겠어.
p.66 [적당히 아파하고 적당히 슬퍼하기를]
"상황이 나쁘면 얼마나 더 나빠지겠니. 살아야 해서 사는 사람도 있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은 닥치면 살게 돼 있어."
그래, 나쁘면 얼마나 더 나빠지겠어. 걱정만 앞세우고 산다고 그 일이 바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
p.70 [삶을 대하는 자세]
간혹 있어. 타인의 아픔이 쉬운 사람들. 상처를 벌려 보고도 별거 아니라는 사람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세상에서 얻어진 아픔이 별거 아닐 리 없는데.
p.82 [별거 아닐 리 없는]
가끔 거품이 이는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 이렇게 계속 구시렁거리게 돼. 괜찮다, 괜찮아. 어떻게 달기만 하고 쓰기만 한 게 인생이겠냐.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뭉개고 사는 법을 배우는 것도 인생이다.
천수를 누리는 것도 감지덕지할 생, 어디 상처라고 백 세를 넘기겠냐. 기억처럼 희미해질 거다, 모든 게.
흘러갈 건 흘러가고 마음에 부유물처럼 떠다니는 것들은 모두 계절 따라, 세월 따라, 죄다 그렇게 지나갈 거다.
그러니 지나갈 것들에 마음을 꽉 쥐여 주면서 살지는 말자.
p.118 [어느 술도가의 이야기 1]
이해는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것.
배려는 내 불편을 감수하는 것.
p.131 [이해와 배려 사이]
덫을 놓고 기다리는 포수처럼 허공에 떠도는 소문에 미리 줄을 그어 놓고 어떤 게 진실인지 가늠하기도 전에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어깃장을 놓고 비난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애초에 내 설명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을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내 인내를 소진하는 건 말 그대로 에너지를 허투루 소비하는 것과 같아.
그 사람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로 혹시나 하는 마음이 현재의 감정선처럼 복잡하게 엉켜 있을 테지만,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조금 더 냉소적일 필요는 있다는 거야.
멍이 드는 관계는 무슨 짓을 해도 계속 멍이 들 수밖에 없으니까.
p.135 [멍]
김동근, <적당히 아파하고 적당히 슬퍼하기를> 中
+)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고백, 그리고 걱정과 응원,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에세이집이다.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은 연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자기 자신이나 친한 친구일 수도 있다. 진심 어린 고백으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에서 저자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다.
이 책의 곳곳에는 꽃을 비유한 표현들이 많다. 가끔은 은유적으로 꽃의 생에 우리의 인생을 엮어내기도 하고, 또 가끔은 꽃말이나 꽃이 피고 지는 자연스러움을 직접적으로 인용하여 솔직한 마음을 담아내기도 한다. 현재 사랑과 이별이 삶의 중심인 사람들에게 와닿는 표현들이지 않나 싶다.
에세이 형식의 글을 모은 것이라 짤막한 단상이 대부분이고, 가끔 시나 수필 형식으로 쓰인 글도 있다. 저자의 글에 자주 언급되는 봄이라는 계절처럼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녹인 글이 전반부에, 굴곡진 인생에 대한 응원과 위로, 토닥임의 글이 후반부에 구성되어 있다.
현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거나, 혹은 이별을 경험하고 아파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구절들이 와닿지 않을까 싶다. 또 앞서 말했듯이 인생의 시련에 조금이라는 흔들리는 친구에게도, 타인과의 관계에 아파하는 자신에게도 따뜻한 위로가 되는 구절들이 있다.
저자의 말처럼 적당히 아파하고 적당히 슬퍼하기를 바라는 사람들, 수없이 흔들려도 넘어지지 말고 넘어지더라도 주저앉지 말길 바라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듯하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