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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종말 기계 - 어느 핵전쟁 입안자의 고백
대니얼 엘스버그 지음, 강미경 옮김 / 두레 / 2022년 12월
평점 :
사실 1969년 가을부터 1970년 8월 랜드연구소를 떠나기까지 나는 내 사무실 일급기밀 금고에 들어 있던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복사했다. 그중 7천 쪽에 달하는 국방부 문서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고, 극비 또는 비밀로 분류된 파일을 보관하는 금고 몇 곳에서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양, 전부 합해서 15만 쪽은 되지 싶은 분량을 복사했다. 게다가 서류마다 몇 장씩 복사했다. 나는 국방부 문서뿐만 아니라 그 모두를 폭로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p.14
요약하자면 반세기 전 내가 알게 된 미국의 핵계획 시스템과 병력 준비 상태 중 대부분의 측면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여느 때처럼 재앙으로 치달을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규모는 과거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p.33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군이 설계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은 폭격기가 (누구를 통해서든) 일단 인증된 실행 명령을 받으면 대통령이나 그 외 민간인이 폭격기의 공격 이행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도록 해놓았다는 점이었다. 핵무기를 발사하거나 터뜨리는 데 필요한 암호를 혼자만 소지하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나 현장 군사령관이 그런 인증된 명령을 내리지 못하게 막을 방법이 실질적으로든 근본적으로든 없다.
pp.91~92
- 요건대, 우리는 적어도 소련이 제1격으로 입힐 수 있는 타격만큼이나 광범위한 제2격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련이 심각한 핵 갈등을 유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우리는 자신합니다.
그는 놀라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이게 사실이야?" 나는 말했다. "나를 믿어, 팀. 사실이야. 세상일이 다 그런 거야."
p.227
쿠바 미사일 위기의 진정한 역사가 드러내는 것은 미국과 러시아라는 초강대국 지도자들 손에 들려 있는 대량 핵무기의 존재는, 심지어 그 지도자들이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책임감 있고 인간적이고 신중하다 하더라도,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문명의 생존에 견디기 힘든 위험을 제기한다는 점이다.
p.292
아버지가 말했다. "나더러 수소폭탄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라고 하지 뭐냐."
1978년에 소화하기에는 너무 놀라운 발언이었다.
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긴 해도 범위가 제한적이고 언뜻 통제 가능해보이는 저출력 전술 무기라는 인식 때문에 자칫 전쟁에서 이 무기를 사용해도 되겠다는 착각을 가져올까봐 두려웠다. 그 결과 미국이 '제한적 핵전쟁'에서 이 무기를 먼저 사용하게 될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되면 이 무기의 사용을 둘러싸고 곧 경쟁이 일 테고, 그러다 보면 광범위한 낙진을 발생시키는 그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큰 '더러운' 무기를 이 무기(중성자탄)로 바꾸는 교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p.379
새로 핵무기를 획득한 나라 모두가 무기 시스템과 지휘 통제 장치에서 취약성을 면할 수 없을 것이며, 그 군대로부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라는 똑같은 압력을 받게 되고, 그런 위임 사실을 세상에 비밀로 해두려는 똑같은 동기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pp.400
인류 종말 기계를 해체한다는 것은 핵무기가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와 핵무기가 가졌다는 환상적인 능력을 포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전략적 핵전쟁에서 목표물을 공경하는 데 필요한 현재의 전략과 기준을 전면적으로 폐기하고 이런 목표와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배치한 병력 대부분을 처분해야 할 것이다.
p.446
대니얼 엘스버그, <인류 종말 기계> 中
+) 이 책의 저자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을 담은 국방부 비밀 문서(펜타곤 문서)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이다. 그의 폭로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끝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기가 알고 있는 미국의 핵전쟁 정책에 관한 내용을 이 책에서 자세하게 폭로하고 있다.
그가 미국의 핵전쟁 정책 입안자였으며 군사 전략 전문가였기에 미국이 어떻게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고, 누가 핵무기 사용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화처럼 미국 대통령만이 핵무기 발사 장치를 누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미국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시 대통령 외에 합동참모본부나 군사령관 혹은 그 발사장치에 접근 가능한 사람 누구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이 핵무기 발사 권한을 누군가에게 위임하여 그 사람이 인증된 실행 명령을 한다면 결코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핵무기를 지휘 통제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이 생각보다 허술하다는 점이다. 미전투 사령부에서 나름의 절차를 정해 지키고 있지만 그 관리 체계에 얼마나 헛점이 많은지 이야기해주는데 솔직히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모습은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확인한 내용이며, 이미 70년대에 폭로하려고 했으나 객관적인 자료를 잃어버렸기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미국방부 기밀 문서의 일부가 공개되었고 그에 따라 평화운동가인 저자가 핵무기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핵무기를 소유한 미국과 소련의 대립 구도를 상세하게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핵무기 지휘 통제 관리의 헛점을 고발하고, 군사 시설 이외의 곳에 무차별적인 공격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실상을 밝혀냈다.
그리고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을 사용한 이후로 한번도 핵을 쓰지 않았다고 자부하지만, 다시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핵무기를 소유한 국가들은 분명 미국처럼 자국에 위협이 된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며 그 위험성을 언급한다.
꽤 두꺼운 분량의 책이었지만 생생한 증언과 경험담, 그리고 재치있는 말투로 (인류 종말이라는 심각한 사안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지속되는 중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제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은 '인류 종말 기계'라는 무서운 말로 만들어졌는데, 책을 다 읽고 나면 '인류 종말 기계의 해체'가 진정한 제목이지 않나 싶다. 핵무기의 위험성과, 핵무기를 지휘 통제하는 사람들의 허술함과, 왜 핵무기를 해체해야 하는지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