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2 (단풍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2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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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그냥 귀찮았을 뿐이다. 무신경하고 관심이 없을 뿐이다. 일하는 가게에 문제가 생겨도 동료가 곤란해져도 자기 시급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오늘 내 시간에 야간 알바 지원자 없었거든. 정 군. 가게가 힘들어지면 자기도 여러모로 불편해질 텐데 어떻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래? 그러면 안 돼."

p.54

"이제 소진 씨 내가 가물치라고 부를 겁니다. 힘센 가물치 씨. 그러니까 호구로 살지 말고 포식자로 살라고요. 알았죠?"

열기와 객기를 연료로 삼고 싶었다. 그러자 누구 하나 함부로 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오기가 끓어올랐다.

p.134

"근데 꼰대가 나쁜 건가? 나는 소신 껏 일하고 그걸로 생업을 꾸렸다고. 그리고 꼭 필요한 말을 할 뿐인데, 왜 그리 잔소리한다고, 꼰대 짓 한다고 화를 내는 거지?"

"그게, 소신 있는 꼰대는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요...... 문제는 자기 말만 해서 아닐까요? 대체로 꼰대들이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안 듣거든요."

p.175

"아들,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야. 안 그래도 힘든 세상살이, 지금의 나만 생각하고 살렴."

살았다. 살아지더라. 걱정 따위 지우고 비교 따위 버리니, 암 걸릴 일도 독 퍼질 일도 없더라. 물론 근배에게 산다는 건 걱정거리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하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남겨준 말을 꼭꼭 씹었다. 하대는 상대방의 시선에서 나온 비교였고, 비교를 거부하자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담담하게 대응하는 근배를 사람들은 더 이상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걱정 또한 지금 현재의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자 실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해졌다.

pp.320~322

평안. 평안은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바라볼 수 있어 가능했다. 늘 잘해왔다 여기기 위해 덮어둔 것을 돌아보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애썼다.

p.431

변화.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닌 스스로의 변화 말이다.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변화를 요구받는 게 싫은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바뀔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기다려주며 넌지시 도와야 했다.

p.485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2> 中

+) 이 소설은 첫 번째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독고'씨에 버금가는 새로운 인물인 '근배'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편을 읽지 않았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독립된 이야기가 코로나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물론 읽었다면 간혹 등장하는 반가운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다.

소설 속 청파동의 [AWAYS 편의점]에는 각각의 사연을 간직한 소시민들이 오고가는 곳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인 것 같고 코로나 사회에서 특히 더 많이 듣게 된 것들이다.

친한 벗의 아들이 편의점 사장인데 어째 누가 봐도 사장 마인드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를 대신해 점장 역할을 하는 선숙, 어떻게든 취업하기 위해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지만 종종 좌절하다가 자갈치 덕분에 힘찬 가물치가 되는 소진, 거리두기로 인해 생업에 타격을 받고 힘들어하다 조금씩 변화하는 성실한 꼰대 최사장,

투 플러스 원 제품을 찾다 만난 근배씨와의 대화로 외로움에서 벗어나 꿈을 찾아가는 청소년 민규,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라 믿고 당당하게 살다가 다시 자기가 하고 싶었던 연극에 도전해보려는 근배, 사람 구하기 어려워 사장에서 야간 알바로 자리매김하며 그저 그런 인생을 벗어나 열심히 사는 인생으로 갱신하는 민식, 아들의 달라진 모습에 감사하며 완벽하려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민식의 엄마

이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애정과 연민의 시선을 이끌어낸다. 여전히 소시민들의 모습을 따뜻하고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와닿는다. 이 소설은 마냥 희망적인 것은 아니다. 전편의 독고씨나 이 책의 근배씨처럼 오지랖 넓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알게 모르게 깨닫게 된다. 그 대화가 길든 짧든 말이다.

근거 없이 말하는 것 같아도 나름 근거가 확실한 근배씨의 논리, 오지랖 넓게 조언하는 것 같아도 진심으로 걱정하는 그의 태도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이번에도 참 재미있게 잘 읽은 것 같다. 명대사를 혼자 중얼거려본다.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 어쩌면 이게 진리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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